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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의 어떠한 공간이든지 내가 빛을 향해 카메라로 바라볼 수 있는 공간이라면 버킹엄 궁전이든지 줄루인들의 울타리를 친 부락이든지, 일본의 불교 사원이든지, 바티칸의 화려한 르네상스 사원이든지 나의 스튜디오가 될 것이다."
유섭 카슈의 인물사진에서 대개 배경은 검은색에 어둡지만 인물은 흑백사진을 통해 하얀색으로 밝게 빛난다. 그는 인물사진을 찍지 않을 때 특히 풍경을 찍을 때는 꿈같은 경치와 초현실주의 같은 효과를 보여주는 그림자의 형상에 매료되었다. 유섭 카슈는 어린 시절, 아르메니아에서 대량학살을 보았으며 그 자신이 직접 그 대량학살을 경험하였다. 그는 투옥된 그의 2명의 친척들에게 음식을 가져다주었다. 그는 죽어가는 아이의 광경을 그 자신의 눈으로 직접 목격하였다. 그는 그의 아버지와 함께 전쟁터의 은닉처로 숨어들어가 쉽게 경험할 수 없는 고요함을 경험하였다. 이후 유섭 카슈와 그의 가족들이 그의 고국에서 캐나다로 도망갈 때 그는 17일 동안 음식도 먹지 않고 사막을 가로질러 달렸다.
"나는 예술가로서 적어도 두 가지를 달성했다고 믿는다. 첫째로 나는 사진을 통해 사진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의 감동을 불러일으키고 싶었다. 나는 내가 찍은 사진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기를 희망한다. 둘째로 내가 사진을 통해 가장 많은 흥미를 가지는 것은 나의 카메라에 한 인물의 마음과 개성이 가득한 그의 영혼을 표현하는 것이다. 훌륭한 마음과 영혼, 그 훌륭한 마음과 영혼에 대한 훌륭한 나의 흥미를 사진이라는 예술세계에 표현하고 싶었다."
쉽게 경험할 수 없는 경험, 그의 인생의 독특한 어린 시절로 인해 자연스럽게 길러진 이 경험들은 훗날 그가 인물사진작가로 활약할 때 인간의 눈을 바라보며 신비함과 그 인물의 영혼을 마음으로 바라보는 그의 사진작가로서의 천부적인 자질을 길러주었다. 독특한 어린 시절의 경험을 거쳐서 유섭 카슈가 캐나다에 도착했을 때 그는 17살이었다. 유섭 카슈는 사진찍기에 매료되었고 그 때부터 사진 콘테스트에 참가하기도 했다. 햇병아리 사진작가는 50달러를 가지게 되었고 10달러는 친구에게 주었으며 나머지 40달러는 그의 고향인 아르메니아에 있는 그의 가족들에게 부쳤다.
"모든 인간들에게 비밀은 숨겨져 있다. 그리고 사진작가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심지어 그들이 알고 있지 못한 모습을 사진으로 통해 보여주는 것이다. 무의식적인 몸짓, 눈의 어렴풋한 빛, 모든 인간들이 세계로부터 그들의 가슴 깊은 곳에 자신을 숨기고 있는 오래된 가면이 올라가는 짧은 순간, 사진작가는 그들의 모습을 통해 그들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거나 감추어야 한다."
유섭 카슈는 같은 아르메니아인이었던 가로라는 인물과 함께 일하게 되었는데 가로는 사진을 찍을 때 되도록이면 빛을 많이 사용하지 않았다. 그는 사진을 찍을 때 최대한 빛을 절제하였다. 유섭 카슈는 그를 통해 사진을 찍는 데는 많은 기술이 필요하며 직관적인 견해와 훈련이 필요하다고 느끼게 되었다. 또한 그는 무엇보다도 사진을 찍는 데는 인내가 필요함을 깨닫게 되었다. 또한 가로는 사람들의 모임에 참석할 때면 유섭 카슈를 데리고 가서 그를 사람들에게 소개시켜 주었다. 그 시절의 여러 모임을 통해 그는 그의 첫번째 아내 솔란지 고티에와 만나게 되었다. 유섭 카슈는 솔란지 고티에와 1939년에 결혼하였다. 1961년에 유섭 카슈의 첫번째 아내였던 솔란지 고티에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갔다. 일년 후에, 1962년 8월 28일에 유섭 카슈는 에스트렐리타 마리아 나크바와 결혼하였다. 이후 그는 1967년부터 1969년까지 오하이오 대학교에서 객원교수로서 사진술에 대해 학생들에게 가르치기도 했다.
"그들이 유명하거나 그렇지 않든간에 나의 주요한 기쁨은 위대한 사람들의 마음에 깃든 심장에 깃든, 그들의 영혼을 사진으로 촬영하는 것이었다."
유섭 카슈는 1941년 12월에 기회를 잡았다. 그가 윈스턴 처칠의 사진을 찍게 된 것이다. 그는 윈스턴 처칠이 있는 방안의 모든 무거운 가구들을 밖으로 꺼집어냈고 그는 처칠을 사진으로 찍을 공간에 빛을 고정시켰다. 그는 테스트 사진을 촬영한 후 2분의 준비시간을 가졌다. 처칠은 빛이 환하게 밝혀진 방안으로 들어섰고 그는 밝은 빛으로 인해 깜짝 놀랐다. 그가 원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는 밝은 빛으로 인해 편안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유섭 카슈는 뷰파인더로 처칠을 응시한 후 처칠의 입술에 있는 시가를 보았다. 유섭 카슈가 윈스턴 처칠의 사진을 촬영할 때 그는 처칠의 시가를 제거하였고 그러자 처칠의 찌푸린 얼굴은 깊어졌다, 그는 머리를 호전적으로 들었고 손은 노여움의 태도를 보였다. 유섭 카슈는 그러한 처칠의 모습을 통해 도전적이며 정복할 수 없는 이미지를 보았다고 말한다. 그는 처칠의 모습에서 포효하는 사자의 모습을 보았다. 유섭 카슈는 윈스턴 처칠의 사진을 찍은 후 그 사진의 제목을 포효하는 사자라고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사진을 찍은 후 처칠은 화사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는 그가 표현할 주제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그는 그의 인생에서 가장 놀라운 변화를 주었던 최고의 사진 중 한 장을 촬영하게 되었다. 처칠의 사진을 촬영하면서 그의 능력을 인정받았던 유섭 카슈는 탄력을 받아 다른 유명 인물들의 사진도 촬영하게 되었다.
"만일 모든 훌륭한 사람들에게서 내가 보았던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허영심이었다."
윈스턴 처칠과 어니스트 헤밍웨이같은 20세기의 거인들을 바라보는 사진 한 장 한 장이 그를 20세기의 가장 유명한 인물사진작가들 중의 한 명으로 만들어주었다. 유섭 카슈는 조명을 통해 사진 속의 인물이 고귀하고 강하게 보이도록 만들며 또는 사진 속의 인물이 깊은 슬픔과 그가 겪었던 인생의 주요한 사건의 느낌을 사진으로 나타낼 수 있도록 표현했다. 그는 사람들의 생각을 사진으로 표현해낼 수 있다고 믿었다.
"아름다운 여성들을 사진으로 찍을 때의 가장 큰 문제는 그녀들이 스튜디오를 떠나고 나면 너 혼자 어두운 스튜디오로 걸어 들어가기 싫어진다는 점이다."
유섭 카슈는 대부분 흑백 사진을 통해 그의 예술 세계를 표현했다. 그의 인물사진 속의 인물들은 개인적인 생각에 잠겨 있거나 깊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카메라를 통해 위대함을 묘사하는 작업에 매료되었다. 비록 유섭 카슈 그 자신 이외에는 아무도 모르지만 그는 60여년동안 17,000명의 사진을 찍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1959년에 캐나다의 국립미술관에서 전시회를 가졌는데 그는 사진작가로서는 미술전시회를 가진 최초의 캐나다 사진작가가 되었다.
"잠시잠깐의 순간에 인간의 영혼과 마음이 그들의 눈에, 그들의 손에, 그들의 태도에 나타난다. 이 순간이 기록의 순간이다."
유섭 카슈의 사진 스타일에서 가장 주목할만 한 특징은 빛의 사용이었다. 그는 마치 한 인물을 조각하듯이 빛으로 인물의 개성을 조각하여 그대로 표현한다. 유섭 카슈의 인물사진작가로서의 성공은 그가 그의 인물사진의 주제가 되는 사람들에 대한 깊은 존중에서 비롯된다. 유섭 카슈의 친형제이자 같은 사진작가이기도 했던 말락은 유섭 카슈가 그의 사진의 주제가 되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사랑과 존중의 느낌을 가질 수 있도록 했다고 말한다. 유섭 카슈의 사진 속의 인물들은 그들 자신이 그들의 주인이었다. 유섭 카슈는 한 인물을 촬영하면서 사진의 주제가 되는 인물이 사진을 통해 그들 자신의 삶의 경험들을 이끌어내어 보여줄 수 있도록 만들었다.
"모든 인간의 비밀은 숨겨져 있다. 그리고 사진작가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들의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다."
유섭 카슈의 사진은 미국 뉴욕의 현대 미술관과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영원히 전시되고 있다. 그는 인물사진을 통해 그 인물이 가지고 있는 본질을 보여주고 싶었다. 유섭 카슈는 빛을 자유롭게 사용한 빛의 달인이었다.
"사진과 마찬가지로 인격도 어둠에서 발전한다."
"나는 훌륭한 사람들도 자주 외로워하는 모습을 바라본다. 그들이 그들 스스로의 힘으로 너무나 높은 곳에 도달했기 때문에 그들이 홀로 있으면 외로움을 느낀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가지고 있는 외로움이 그들의 위대한 창조적인 능력을 이룰 수 있도록 만들었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 전에 네 사진의 인물과 주제들을 바라보라, 그리고 생각하라. 심장과 마음은 카메라의 순수한 렌즈이다."
유섭 카슈는 독특한 어린 시절을 겪었는데 그 어린 시절의 경험이 그가 사진을 잘 찍을 수 있는 천부적인 자질을 길러주는 바탕이 되었습니다. 일부러 의도적으로 노력한 것이 아니라 인생의 위험요소에 반응하면서 인생의 특정한 어떤 시절을 겪으면서 천부적인 재능이 길러지기도 합니다. 이 점은 천재들의 인생에서 발견되는 요소인데요. 메이저리그의 어떤 투수는 어릴 때 바다에서 그물로 물고기들을 들어올리면서 그 무게를 이겨내는 힘으로 팔 힘이 길러졌다고 합니다. 케냐의 마라토너들은 고원에서의 환경에 반응하며 그 환경을 이겨내기 위해 폐활량이 길어졌다고 하죠. 유섭 카슈의 경우도 어린 시절에 그가 겪었던 독특한 경험으로 인해 그가 인간의 본질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그의 독특한 무의식의 세계를 형성케 해주었습니다. 인생이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인생의 시간은 어느 것 하나 빠뜨릴 것 없이 서로 연결되어 있을 것입니다. 정말 중요한 인생이라면 인생의 어느 한순간 한순간 버릴 것없이 소중하겠죠. 인생의 빛도 어둠도 서로 어울리며 맞물려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출처 http://blog.naver.com/eight23/50037475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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