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정  2008년 11월 7일~ 2009년 2월 26일
장소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3층



얼마 만에 찾은 미술관인가

오랜만에 일요일(11월 16일)에 다른 계획 없이 집에서 휴식을 취했다. 10시 넘게 늦잠을 잤다. 친구들은 나이가 들면서 아침잠이 없어진다고들 하는데, 나는 아직까지도 아침에 일어나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평상시 6시 20분 정도에 일어나는데 매일 아침 고역이다. 아무 일도 없는 휴일에는 10시를 곧잘 넘긴다.

떡라면으로 점심을 때우고 아내와 함께 예술의 전당을 찾았다. 우면산이라도 가볍게 산행할 생각을 했었는데, 전날 무리했는지 몸이 무거워서 미술관으로 방향을 바꿨다. 모스크바에 있는 러시아국립푸시킨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바로크 작품들을 가져와 『서양미술 거장전, 렘브란트를 만나다』라는 제목으로 연 전시회이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매우 많았다. 오디오 가이드를 빌리는 데도 줄이 길게 늘어서 있어 빌리는 것을 포기했다. 아직 방학을 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아이들이 많지는 않아서 관람하는 데는 크게 지장이 없었다.


렘브란트를 내세우는 것이 맞는가

서양미술 거장전이라고 하지만 17-18세기 서유럽의 바로크와 로코코 미술 중심이다. 화파로는 플랑드르 화파, 네덜란드 화파, 이탈리아 화파, 프랑스 화파, 스페인 화파를 대표하는 거장들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푸시킨미술관 본관 1-2층의 ‘올드 마스터 아트 갤러리’ 컬렉션에서 선별된 작품들이라고 한다.

렘브란트를 만난다고 하지만 유화는 한 점뿐이고 에칭이 26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렘브란트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 맞는지?


그래도 역시 렘브란트

유일한 렘브란트 유화는 <나이 든 여인의 초상>(1650-1652)이다. 어두운 색의 중후한 외투를 입었고, 가장자리를 붉그스름한 털로 둘렀다. 두 손을 가지런히 아랫배 위에 올려놓았는데, 왼 손으로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잡고 있다. 오른손 약지손가락에 두툼한 반지를 끼었다. 머리에 붉은 색 기운이 있는 천을 썼다. 나이는 들었지만 얼굴은 팽팽하고 눈동자도 초롱초롱하다. 일자로 다문 입은 근엄하면서도 인자한 인상이다. 배경은 어두운 단색이다. 빛은 얼굴에 집중되어 있다. 역시 렘브란트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

에칭 판화 중에는 자화상이 4점 있다. 렘브란트는 유화로도 자화상을 많이 그렸다. 자화상을 많이 그린 것으로는 렘브란트가 고흐보다 선배이고 작품수도 더 많다. 젊은 시절의 당당한 모습으로부터 늙은 시절의 애잔한 모습까지 과장 없이 사실대로 표현했다. 웬만한 자신감이 아니면 자기 모습을 그대로 그리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다시 만난 화가, 무리요

초상화들이 꽤 있지만 눈길을 잡은 것은 무리요의 <과일 파는 소녀>(1650-1655)이다. 무리요는 프라도미술관에 갔을 때 도판을 구입한 <선한 양치기>를 그린 작가이다. 무리요는 스페인 장르화 역사상 ‘아동 장르’라는 새로운 갈래를 창시했다고 한다. 세비야 서민들의 생활을 주된 소재로 하면서 특이 아동들을 자주 그렸다는 것이다. 빛과 어둠의 조화를 이룬 카라바조주의적으로 표현했다는 설명이다. <선한 양치기>도 아동이다.

<과일 파는 소녀>의 배경은 어둡고 오른쪽 밑에는 작은 나무가 보인다. 긴 흰 천을 머리에 쓰고, 녹색 조끼 같은 것을 입었으며, 붉은 앞치마를 걸쳤다. 오른손으로는 사과, 귤, 재스민 꽃 등이 담긴 바구니를 옆구리에 꼈고, 왼손으로는 머리에 쓴 흰 천을 잡고 턱 밑을 가리면서 살짝 웃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빛나는 두 눈으로 대상을 쳐다본다. 하얀 윗니가 가지런하고 코등이 오똑하며 눈매가 맑다. 얼굴과 손의 피부는 고우나, 노동을 해서 그런지 팔뚝은 굵고 힘이 있어 보인다. 바구니에 담고 있는 과일을 전부 사주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매력적인 표정이다.

대도록을 구입했는데 전시작품을 담은 핸드폰 줄을 사은품으로 주었다. 나와 아내는 이 <과일 파는 소녀>가 있는 줄을 선택하는데 의견일치를 쉽게 보았다.


마음을 잡는 스페인 화가들

같은 스페인 화가인 안토니오 데 페레다 이 살가도의 <회개하는 마리아 막달레나>(1640)와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의 <성모자>(1658)도 마음을 잡는다. 살가도는 죽음과 삶의 허무를 표현한 바로크적 메시지를 담은 작품들로 유명하고, 수르바란은 ‘스페인의 카라바조’로 불리는 종교화의 거장이다.

둘 다 얼굴 표정이 인상적이다. <회개하는 마리아 막달레나>는 앉아서 좌측 상단 쪽을 바라보는 모습을 잡았다. 오른손으로 나무 십자가를 잡고 창백하고 지친 얼굴을 하고 깊은 우수에 잠겨 갈구하는 표정으로 위를 쳐다보고 있다. <성모자>는 평온한 표정의 젊은 성모가 아기 예수에게 젖을 물리고 있다.

두 그림 모두 오른쪽 하단에 상징물을 배치했다. <회개하는 마리아 막달레나>의 우측 하단에는 채찍, 금단지, 해골이 있다. 채찍은 회개하는 죄인을 상징하고, 해골은 구도자의 상징으로 죽음에 대해 명상케 한다. 금단지는 향유를 담아 예수의 발에 부은 막달레나의 상징물이다. <성모자> 우측 하단에는 작은 타원형 접시에 흰 진흙 주전자와 사과가 그려져 있다.

스페인의 정서가 의외로 가슴에 와 닿는다. 관심을 갖고 살펴볼 일이다.


대자연 앞의 초라한 인간의 전투

프랑스 고전주의 거장 중 한 명인 클로드 로랭의 <다리 위의 전투(막센티우스 황제와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전투)>(1655)는 전투화라기보다는 풍경화에 가깝다.

좌측으로 큰 나무들이 배치되어 있고 우측에도 나뭇가지가 좀 보인다. 맨 앞에는 가축 떼를 몰고 피난 가는 민초들의 모습이다. 화면의 5분의 2 선 정도에 수평선이 그어지고 강과 멀리 산이 보인다. 전투가 진행되는 다리는 화면 전면 중앙에서 우측 부분에 있다.

배경의 거대한 자연에 비해 인간들의 모습은 너무 보잘 것 없고, 치고받고 싸우는 것이 자연의 관점에서 보면 아무 것도 아닌 무상한 것으로 보인다. 다리에서 떨어지고 창에 찔리고 그렇게 죽는 사람도 많지만 대자연의 관점에서 보면 사소한 점에 불과하다.


그리고 또

프랑드르 화파 화가인 소 피테르 브뤼헬의 <겨울: 스케이트 타기>, <봄: 정원 가꾸기>(1600-1605)는 선명한 색이 발걸음을 잡았다. 400년 전에 그려진 그림이 맞나 싶을 정도로 색이 선명하다. 틀림없는 목판에 유화 원작이다. 4계절 중 <여름>과 <가을>은 부다페스트국립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루벤스의 <성 도미니크에게 묵주를 주는 마리아>(1630년대)는 이번에 전시된 작품 중 가장 큰 것 같다. 거침없는 필치와 대담한 구성 등 루벤스의 특징을 보여준다.


로코코의 대표적인 화가인 프랑수아 부셰의 <헤라클레스와 옴팔레>(1732-1734)는 누드의 남녀가 진하게 입맞춤을 하는 장면을 잡았다. 헤라클레스가 신들로부터 벌을 받아 3년간 리디아 여왕 옴팔레의 노예로 생활했다. 헤라클레스와 옴팔레를 표현하는 장면은 여러 가지로 구성할 수 있겠지만 부셰는 노골적인 정사 장면을 표현했다. 부셰는 ‘연애 신화를 창조한 화가’, ‘가슴과 엉덩이 그림’이라는 야유를 받았다고 하는데, 이 그림은 그러한 화가의 에로티시즘이 잘 표현된 걸작으로 평가 받는다.

 
알아야 할 것은 많은데

그 외에도 바니타스, 베두타, 폐허 미술, 정물화, 풍속화, 종교화, 역사화, 풍경화, 장르화 등등 다양한 작가들과 작품들이 각기 자기 색을 자랑하고 있다. 알아야 할 것은 많고 지식과 시간은 부족하고…

   
 [출처] 『서양미술 거장전, 렘브란트를 만나다』 전시회|작성자 파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