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그녀의 몸들’이라는 제목으로 신디 셔먼과 바네사 비프르크트 사진전과 ‘토마스 루프’ 사진전을 열어 현대사진의 이슈와 담론을 제시했던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씨킴(CI KIM) 사진전 ‘extra seeing’이 열리고 있다. 전시 제목 ‘extra seeing’에서 ‘extra’는 ‘여분의, 특별한, 극한 혹은 영화의 엑스트라’ 등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듯이 평범하기도 하고 특별한 다중적인 작가의 시각을 나타낸다.



데미안 허스트의 대형 설치물이 전시된 갤러리 입구를 지나 2층 전시장으로 오르면 디아젝  프린트(Diasec Print)를 한 대형 사진들이 벽에 걸려있다.
‘도시풍경’과 ‘TV 시리즈’라는 두가지 주제로 전시된 사진들은 멀리서 보면 그림 같다. 비오는 날 거리, 사람들과 차 안에서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촬영한 ‘도시풍경’은 채도가 높은 유화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고 손으로 문질러 놓은 듯하고, 텔레비전 화면을 포착한 ‘TV 시리즈’는 일러스트나 포토샵을 이용해 조작한 이미지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씨킴은 그동안 회화, 설치 등의 작업을 해왔다. 그래서일까. 전시된 작품은 회화적이고 구성적이다. 사진작업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 작가에게 사진은 어떤 의미인지 작가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씨킴은 80년대 말, 소형 파노라마 카메라를 들고다니며 해외의 미술관과 백화점, 식당가 등을 찍기 시작했다. 외국에서 본 인상적인 건물이나 인테리어 등을 자료로 남기고, 당시를 기억하기 위해 사진을 찍어왔다면 지난 10년 전부터는 도시의 거리 풍경을 담아왔다. 어느날 렌즈를 통해 거리의 풍경을 보았다가 거리의 표지판이 작가의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하늘나라에는 상대방을 배려하기 위해 길을 안내하는 표지판이 많을 것이라는 생각에 눈 앞의 표지판을 보면서 작가는 지금 있는 곳이 하늘나라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고 그때부터 카메라를 통해 이상적인 세계를 담아왔다.

씨킴은 도시의 풍경, 거리 사람들의 모습, 비오는 날을 소재로 사진을 찍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물방울과 물방울의 움직임으로 인해 번지는 사람들, 형형색색의 우산들, 주변이 어두워져 더욱 강해지는 자동차 백라이트 등의 풍경은 카메라로 본 또 다른 이상의 세계였다. 특히 붉은 빛을 뿜어내는 백라이트는 좌절했던 지난 날, 깊고 고요한 바다 속으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던 때부터 바다색과 함께 작가에게 강한 이미지를 준 색감이다. 그래서 더 백라이트를 좇아 촬영하기도 했다.



그는 사진작업과 함께 그동안 평면회화, 콜라주, 조각, 설치작업을 하기도 했다. 2003년 런던 유니언 프로젝트 갤러리와 천안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두 차례 개인전을 가졌고, 독일 라히프치히 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돼 있기도 하다. 그동안 씨킴이 해왔던 미술작업은 규모가 컸기 때문에 일정한 공간과 장비가 있어야 가능했다. 그래서 일을 하기 위해 외국에 나가거나, 작업실이 아닌 집에서는 그림을 그릴 수가 없었다. 작가는 “사진을 찍는 것은 작업실과 같은 일정한 공간이 아닌 곳에서도 자유롭게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림을 그리는 것과 다르다”고 말했다.
씨킴은 초기 사진작업을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그림을 못 그리고 싶은 욕망 대신 사진을 찍었지만, 이제는 제한된 공간 내부에서 만드는 그림과 외부에서 자유롭게 촬영하는 사진이 각각 의미가 있다고 보고, 동등한 가치를 부여하고 작업해 가고 있다.

 

‘TV 시리즈’의 경우 집에서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해 시작한 작업이다. 15년째 쓰던 오래된 컬러 텔레비전을 디지털 평면 텔레비전으로 바꾸고 텔레비전을 켜는 순간 씨킴은 예전에 쓰던 텔레비전과 확연한 차이를 느꼈고, 강한 색감과 전파방해에서 오는 화면의 깨짐 등 새로운 느낌을 포착했다. 그가 관심을 가지는 대상은 구체적인 것은 아니지만, 색감과 구성, 리듬, 화면 등에서 발견한 장면을 독특하게 담아내고 있다.
씨킴은 사진을 찍기 위해 특정 장면을 녹화해 두고 촬영하지 않는다. 거리에서 찍는 사진도 마찬가지로, 우연한 장면을 포착하고 대상과의 운명적인 만남을 담는다. 장면을 연출하거나 결과물을 조작하지 않는 스트레이트한 사진을 찍고 있다.

씨킴에게는 일상의 풍경을 낯설게 담아내는 눈이 있다. 작가의 독특한 시각은 주변 사물과 대상을 볼 때  정신적 집중력을 갖고 바라보는데서 출발하고, 자신이 원하는 장면에서 본능적으로 셔터를 누른다.



씨킴 사진의 중요한 특징은 형식적 추상성과 회화성이다. 비정형의 흩어진 형상들, 색으로 충만한 그의 사진은 특정 순간 눈 앞의 대상을 기계적으로 복제하는 사진 본래의 사실적 느낌보다는 마치 물감으로 그려낸 듯한 강한 회화적 느낌을 자아낸다. 특히 비오는 날의 풍경을 찍은 사진 시리즈에서는 이러한 특징이 극대화된다. 비전문가들 조차도 사진 이미지를 자유롭게 조작 변형하며 다양한 회화적 효과를 창출하고 있는 지금, 이같은 씨킴의 사진은 현대미술에서 포스트 리얼리즘 사진가들이 즐겨 제작하는 연출사진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씨킴은 디지털로 사진을 조작하고 변형하기 보다는 일반적인 아날로그 방식의 스트레이트 사진만을 고수한다는 점이다. 즉, 어떠한 사전적 상황 조작, 혹은 인화과정에서의 변형 없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이것이 씨킴 사진만이 지니는 독특함이라고 볼 수 있다.



‘보다’라는 의미의 ‘see’에서 발음이 같은 ‘ci’를 가져와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는 씨킴(CI KIM)의 본명은 김창일이다. 그는 원래 아라리오 산업을 운영해온 사업가로, 지난 2002년 천안 신부동에 아라리오 갤러리를 만들면서 갤러리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영국의 인디펜던트지에 특집기사로 씨킴이 소개되고, 국제적인 미술잡지인 모노폴에서는 올여름 독일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의 큐레이터, 갤러리스트, 컬렉터, 비평가’ 중 한명으로 그를 꼽는 등 현재 현대미술 컬렉터로서 활발히 활동해오고 있다. 최근 미술계에서 활동하는 8명의 젊은 작가를 선정해 해마다 5천만원씩 5년간 작업 제작비용을 지원하겠다는 획기전인 제안을 밝히기도 했다. 이미 지원 작가들이 선정돼, 아라리오 갤러리와 소속계약을 맺고 지원을 받고 있다. 또 그는 제주도에 창작스튜디오를 만들어 국내외 작가들이 교류하는 레시던지 프로그램을 준비 중에 있다.



미술시간 외에는 미술교육을 따로 받아본 경험이 없는 씨킴은 28세 때 천안시외버스터미널에 매점을 직접 만드는 것을 시작으로 그동안 사업적 감각과 미적 감각을 자연스레 익혀왔다. 이를 스스로 작가로서의 실습과정이라 말하고, 또한 외국에 나가 좋은 작품을 많이 볼 수 있었던 것을 특별과외 수업이었다고 말한다. 미술작품을 컬렉트하고, 고르는 과정에서 자신도 누군가를 향해 소리를 지르고, 표현하고 싶어 작업을 시작했다. 씨킴은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는 것은 사업과 달리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 할 수 있었고, 그것이 작가라고 생각하고 있다. 50대 중반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지만 “작업을 통해 자신의 또 다른 정체성을 찾고, 기존의 역할과 싸워가고 있다”고 말하는 그는 순수한 열정을 가진 사람이다. 

글 / 진달래기자(월간사진 2005년 8월호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