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적 팝아트는 존재하는가

                                                                          글｜홍경한(월간 퍼블릭아트 편집장)

한국적 팝아트(korean pop art)’라 불리는 미술경향이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대중적 소스에 패러디라는 양념을 적당한 기호에 버무린 캠벨스프가 대형마켓에서 가장 잘 팔리는 상품으로 등장하자 눈에 잘 띄는 전면에 배치되었던 것처럼 작금 우리나라에서도 대중들의 열렬한 지지와 호응에 힘입어 유사한 그림들이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마치 “작금의 미술은 모두 팝아트로 통한다.”는 다소 과한 발언이 어색하지 않을 만큼 현실에서 느껴지는 강도는 꽤 세고, 한국현대미술의 흐름을 대표하는 창이자 성격을 규정짓는 기준점, 혹은 가능성으로 인식됨과 동시에 동시대 문화현상의 하나로 융숭한 대접을 받고 있다.

 
실제로 '한국적 팝아트'를 하고 있다는(한다고 여겨지는) 작가들은 미술시장에서 상종가를 형성하고 있다. 크리스티 경매에서 고가에 낙찰된 많은 작품들이 소위 '코리안 팝'이고 각종 아트페어에서 가장 열렬한 짝사랑을 받는 것도 바로 팝계열의 작품들이다. 이러다 보니 각 화랑들과 미술관들이 앞 다퉈 작품을 소장하려하거나 전시를 꾸미는 일이 비일비재해졌고 대학 졸업을 앞둔 학생들의 그림까지 싹쓸이 한다는 소문이 들릴 정도로 주가가 높아지자 이때가 기회이다 싶어 (하이퍼리얼리즘이나 프린팅과 더불어)팝아트의 형식을 빌린 그림들을 무수히 생산해내는 작가들이 범람하고 있다. 대중문화의 흐름을 리드하는 중요한 콘텐츠로서 시장이 이에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있기에 예술의 다양성 상실이라는 문제에도 불구하고 답습의 길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작금 열리고 있는 작가라는 직업을 갖고 싶어하는 이들의 작품들을 보자. 그린 이는 다른데 그림은 대체로 비슷한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팝아트의 영향은 외부에서도 드러나, 각종 미디어나 매체들로부터 러브콜의 주요 대상으로 낙점된 이후 시공을 넘어 제2, 제3의 형태로 리플레이 되는 등 미술계 외에서도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브라운관이나 영화, 인터넷 등의 다매체에 노출되어 온 디지털 세대가 새로운 미술문화의 소비층이자 중심으로 떠오르면서 미술사적으로 가장 대중적이랄 수 있는 팝아트와 이것을 소재로 삼은 문화상품이 인기일 것이라는 치밀한 상업적 전략과 맞물려 광고나 팬시, 패션, 방송의 주요 배경으로 활용되는 등 기업의 홍보와 상품 이미지를 부각시키려는 목적의 쓰임새로 이어지고 있다. 주제가 화려하게 드러나고 내용 면에서도 친근하며 재미있을 뿐만 아니라 만화적이며 동화적인 캐릭터들, 우울하면서도 명랑한 여운들이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소비자들의 감성에 강하게, 그러나 편안하게 인식될 수 있다는 장점이 십분 활용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그곳에‘한국적 팝아트’란 없다. 단지 ‘한국의 팝아트’, 혹은 ‘한국에서의 팝아트’, ‘한국작가들에 의해 그려진 팝아트’가 있을 뿐이다. ‘한국적’이라는 수식어는 자의적인 해석을 담보할 뿐 디테일한 개념을 조각하지는 않는다. 사실 우리가 너무나 쉽게 남발하고 있는 이 ‘한국적 팝아트’란 말은 원조 격인 영국과 미국의 팝아트, 만화 캐릭터를 위시한 일본 팝, 프랑스인들의 의식과 시각이 담겨있는 누보 팝(Les Nouveaux Pop) 등 50년대 이후 각 국가별, 대륙별 존재해온 팝아트에 대한 지역적, 표피적 구분용으로 한정적이져야 마땅한 수준이다. 내재된 속성이 규정적 성격을 반영하거나 정의, 또는 고유한 불변의 철학적, 미학적 담론을 수반하고 있는 상태는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의 팝아트가 기성품의 이미지를 그대로 빌려왔다면 누보 팝은 스토리를 동반한, 좀 더 은유적으로 세태를 꼬집는 형국이라고 할 수 있으며 특유의 영민함이 바탕칠 된 만화를 차용한 일본 팝, 정치적 풍자를 담는 중국작가들의 성격 짙은 작품들(이들도 점차 변하고는 있지만)과는 달리 우리나라의 팝아트는 복잡다단하고 모호한 표현양식, 대중문화의 여러 양상들을 차용하거나 아니면 형식적인 의제들이 뒤섞여 옮겨진 것 외, 그 어떤 것에서도, 그 누가 보기에도 한국적이랄 수 있는 아우라를 발견하기 어렵다. 즉 한국적이라는 특성이 팝아트 본연의 속성에 담지 되든, 팝아트가 한국성에 함몰되든 어느 쪽으로의 가울기도 허용치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2000년 이후 펼쳐지고 있는 많은 전시들이 ‘한국적 팝아트’를 주요 화두로 한 채 활발하게 전개되어 왔다. 하지만 숱하게 열린 양에 비해 한국적 팝아트를 올곧게 분석해 명쾌한 해답을 이끌어 낸 건 거의 없었다.(콕 집어서 말하진 않겠으나 최근의 여러 전시만 해도 그렇다.) 기획력을 언급할 필요도 없는 그저 비슷한 양식의 그림을 그리는 우리나라 작가들을 모아 놓고선 이를 한국적 팝아트라고 지칭하는 예가 수두룩했을 뿐이다. 속을 들여다보면 허무할 만큼 어정쩡한 정신성이 부유하거나 ‘짚어보자’는 구호 정도에 불과한 것이 태반이었지만 대부분 에둘러 한국적인 팝아트라 말하거나 믿었다.(믿으려 했다.)  그러나 이런 전시들은 다분히 시류에 부합하는 양상에 멈췄고  오히려 본의든 아니든 분명한 개념이나 충분한 담론 없이 맹목적으로 한국 작가에 의해 그려진 팝아트류의 작품들을 모조리 한국적 팝아트로 규정하는 인식적, 고의적 오류를 범했다. 작품들의 면면, 즉 내용적으로도 기껏해야 민화 속 한 장면을 차용하거나 예전부터 아무런 의심없이 사용되어온 재료를 밑바탕으로 한 뒤 흔하게 접할 수 있는 대중적인 이미지를 화면에 얹힌 것을 ‘한국적’이라고 표해왔음을 부정할 순 없다. 나아가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서 몇 가지 형상을 믹스해 ‘하이브리드’라는 그럴싸하게 포장한 채 껍데기엔 ‘한국적 팝아트’라는 이니셜를 새겨 넣기도 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본질적으로 이는 전혀 한국적이지 못하다.

 
일부에선 ‘한국적 정서가 이입된 팝’을 운운하기도 하지만 ‘정서’라는 개념이란 기실 이현령비현령이기 십상이고 적어도 전통성의 계승과 전개에 있어 목격자가 되거나 주지성이 드러나야 하지만 그것을 제대로 읽어내긴 어렵다. 특히 ‘정서(개인적이든 사회적, 정치적이든)’를 반영하지 않은 미술이란 존재할 수도 없다는 사실에서 그 자체로 올곧게 받아들이기엔 의문점이 많다. 따라서 젊은 작가들을 중심으로 국내외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음에도 그 어디에서건 왜 한국적 팝아트인지, 무엇이 한국적 팝아트이게 하고 다른 팝아트와 변별성을 갖게 하는지에 관한 설명은 부족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일부에선 시장을 주름잡고 있는 팝과 그것에 무조건적인 애정표현을 하고 있눈 분위기에 대한 반발도 있다. '이미지의 장난'처럼 비춰질정도로 표면에 드러나는 가벼운 형식성, '한국적'이라는 수식어에 대한 진정성을 문제 삼아 다양한 불만들이 제기되고 있으며 혹자들은 이제 그 생명력이 다했다는 평가를 내리는, ‘건전한’ 안티들도 존재한다. 이들은 작가들의 비창의적인 사고와 선배들의 그늘에 안주하려는 게으른 자의식을 비판하고 실험성과 역동성에 자리를 내준 예술의 획일성을 우려하며 자본주의 논리에 젖은 세태를 한탄하기도 한다.(비록 지엽적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운 극히 소수에 불과하지만)

 
허나 분명한 것은 이러한 '한국적'인 것에 대한 심도 있는 고찰이나 이견, 일종의 바람이 이미 화단에 자리를 잡은 작가들에 의해 주도된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이들의 시장장악력을 흠모해온 후배들은 의도적인 흉내를 내고 있지만.) 일부 언론과 의식없이 글을 써왔던 평자들, 그리고 개념보단 물질의 획득을 지상최대의 미덕으로 여기는 소수의 화상들이 만들어낸 결과물일 뿐 작가들은 언제나처럼 단지 그것이 한국적 팝아트든 아니든 자신의 작업에 최선으로 열중했을 따름이었다. 되레 어떤 틀에 묶는 것을 싫어하는 부류가 더 많다.

 
주변인들이 앞서서 그들의 작업에 애써 의미론적 관점을 부여, 해석하고 동시대 한국현대미술에 있어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작전'과 '계산된' 과정이 어려서부터 대중문화를 접하고 우상화하며 자란 젊은 작가들의 잠재적 요소로써 팝적인 성향이 내재되어 왔다는 자연스러운 순연 이상의 의미로 다가서게끔 한 원인을 제공했으며 산발적으로 등장시켜 트렌드를 만들고 여기에 어떤 거창한 브랜드를 붙이려 했던 것이 결국 이름만 그럴싸한 한국적 팝아트라는 홀로그램을 생성해냈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