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비빔밥 정신이 있는 한 멀티미디어 시대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백남준 VS 김홍희
 

김홍희 == 1992년 과천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회고전과 93년 선생님에서 한국에 유치했던 휘트니 비엔날레는 우리 미술계에 새로움의 충격을 주었습니다. 또한 1994년 10월 요나스 매카스와 함께 선생님께서 기획하신 뉴욕 앤솔로지 필름 알카이브에서의 '서울 뉴욕 멀티미디어 축제'는 한국 테크놀로지 작가들의 국제무대 진출을 위한 발판이 되었습니다. 95년에도 한국 미술계를 위한 특별한 계획이 있으십니까?
백남준 == 한국에서는 내가 너무 과대평가 되어 기대가 큰 것 같아요. 내 지위가 확고해졌다고도 볼 수 있지만 산 넘어 산이라고 나부터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더구나 예술은 결과야 어떻든 개인을 위해 하는 것이지 나라를 위해 하는 것은 아니지요.
김 == 선생님께서는 1993년에 이어 1994년에도 독일 『캐피털』지가 선정한 세계 100대 미술인 가운데 5위로 자리를 굳히고 있는데, 오히려 한국에서는 선생님이 과소평가되고 있는 것 같은데요. 아니 예술적으로는 제대로 이해 받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백 == 우리나라는 올림픽과 예술을 혼돈하고 있어요. 군정 때부터 이겨야한다고 밀어 부쳤고, 일등을 너무 좋아하는 것 같아요. 미술에서는 다름이 중요하지 누가 더 나은가의 문제가 아닙니다. 미로와 피카소는 서로 다른 것이지 누가 더 잘하는 게 아니지요. 다른 것을 맛보는 것이 예술이지 일등을 매기는 것이 예술이 아닌 겁니다.
 
백 == 요즘 멀티미디어, 멀티미디어 하는데, 일본 어느 신문에 의하면 지난해 가장 많이 단어가 바로 멀티미디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멀티미디어에 자신을 가져도 됩니다. 비빔밥 정신이 바로 멀티미디어니까요. 한국인은 복잡한 상황을 적당히 말아서 잘 지탱하는 법을 알아요. 그 복잡한 상황이 비빔밥이지요. 프랑스 비평가 장 폴 파르지에도 한국의 또는 백남준의 심볼은 비빔밥이라고 말했지만, 우리나라에 비빔밥의 정신이 있는 한 멀티미디어 세계에서 뒤지지 않습니다. 비빔밥은 참여예술입니다. 다른 요리와 다르게 손수 섞어 먹는 것이 특색이니까요. 비빔밥 문화는 멀티미디어 시대에 안성맞춤이지요. 전자매체의 세계가 되어서 제일 덕보는 것이 우리나라일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6.25 때만 해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어요. 1910년 한일합방 당시도 신문에 한국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죠. 노벨 평화상을 탄 루즈벨트가 한국을 일본에 주었는데, 그의 전기에 그런 사실이 쓰여 있지도 않아요. 을사 보호조약에서 우리나라가 외교권을 뺏길 때 제일 먼저 철수한 공관이 미국이었고, 미국 타임 매거진에 이승만이 나온 적은 한번도 없었죠. 그 정도였는데 짧은 기간에 굉장히 발전을 했습니다. 전쟁 때 우리나라가 무시당한 것은 말도 못해요.
김 == 그래서 그런지 한국전쟁은 다른 전쟁에 비해 제대로 된 소설도 없고 유명한 영화도 없잖아요. 예를 들어 월남전 주제의 명화는 속출하는데 말입니다.
백 == 적이라도 멋있어야 알아주지요. 같은 맥락이지만, 2차대전 영화 가운데 독일군과 싸운 영화는 많아도 일본군과 싸운 영화는 거의 없잖아요. 한국전도 마찬가지예요. 한국전은 미국인에게는 싫지만 어쩔 수 없이 싸운 전쟁이지요. 2차대전에 겨우 이겨 한숨쉬려니까 또 이름도 모르는 나라에 가서 많이 죽어야 했던 거지요. 생명을 제일 위하는 나라에서 생명을 바쳐가며 억지로 이겨놓았더니 그 후는 이승만 독재다, 박정희 독재다 해서 독재정권만 섰거든요. 민주주의 때문에 싸웠는데 말입니다. 한국은 아직도 제 평가를 못 받고 있죠. 그러니까 그 점에서 한국문화가 밖으로 나가는 것은 바람직합니다.

김 == 금년 베니스 비엔날레 100주년을 계기로 한국관이 설립되어 윤형근, 곽훈, 김인겸, 전수천 등 한국작가 4명이 참여하고, 또 일본 대표로 최재은이 나가게 되는데, 선생님께서 참여작가들에게 선배로서 조언을 해 주시지요.
백 == 요즘 멀티미디어, 멀티미디어 하는데, 일본 어느 신문에 의하면 지난해 가장 많이 단어가 바로 멀티미디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멀티미디어에 자신을 가져도 됩니다. 비빔밥 정신이 바로 멀티미디어니까요. 한국인은 복잡한 상황을 적당히 말아서 잘 지탱하는 법을 알아요. 그 복잡한 상황이 비빔밥이지요. 프랑스 비평가 장 폴 파르지에도 한국의 또는 백남준의 심볼은 비빔밥이라고 말했지만, 우리나라에 비빔밥의 정신이 있는 한 멀티미디어 세계에서 뒤지지 않습니다. 비빔밥은 참여예술입니다. 다른 요리와 다르게 손수 섞어 먹는 것이 특색이니까요. 비빔밥 문화는 멀티미디어 시대에 안성맞춤이지요. 전자매체의 세계가 되어서 제일 덕보는 것이 우리나라일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6.25 때만 해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어요. 1910년 한일합방 당시도 신문에 한국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죠. 노벨 평화상을 탄 루즈벨트가 한국을 일본에 주었는데, 그의 전기에 그런 사실이 쓰여 있지도 않아요. 을사 보호조약에서 우리나라가 외교권을 뺏길 때 제일 먼저 철수한 공관이 미국이었고, 미국 타임 매거진에 이승만이 나온 적은 한번도 없었죠. 그 정도였는데 짧은 기간에 굉장히 발전을 했습니다. 전쟁 때 우리나라가 무시당한 것은 말도 못해요.
김 == 그래서 그런지 한국전쟁은 다른 전쟁에 비해 제대로 된 소설도 없고 유명한 영화도 없잖아요. 예를 들어 월남전 주제의 명화는 속출하는데 말입니다.
백 == 적이라도 멋있어야 알아주지요. 같은 맥락이지만, 2차대전 영화 가운데 독일군과 싸운 영화는 많아도 일본군과 싸운 영화는 거의 없잖아요.

한국전도 마찬가지예요. 한국전은 미국인에게는 싫지만 어쩔 수 없이 싸운 전쟁이지요. 2차대전에 겨우 이겨 한숨쉬려니까 또 이름도 모르는 나라에 가서 많이 죽어야 했던 거지요. 생명을 제일 위하는 나라에서 생명을 바쳐가며 억지로 이겨놓았더니 그 후는 이승만 독재다, 박정희 독재다 해서 독재정권만 섰거든요. 민주주의 때문에 싸웠는데 말입니다. 한국은 아직도 제 평가를 못 받고 있죠. 그러니까 그 점에서 한국문화가 밖으로 나가는 것은 바람직합니다.
김 == 금년 베니스 비엔날레 100주년을 계기로 한국관이 설립되어 윤형근, 곽훈, 김인겸, 전수천 등 한국작가 4명이 참여하고, 또 일본 대표로 최재은이 나가게 되는데, 선생님께서 참여작가들에게 선배로서 조언을 해 주시지요.
백 == 한국관이 자그마한데 4명이나 나가요? 어쨌든 베니스 비엔날레에 꼭 나가야 되는 것도, 꼭 상을 타야되는 것도 아닙니다. 한국관이 없는 것은 수치였지만, 있다고 대수는 아니지요. 우루과이도 있고 파라과이도 있는 걸요. 이제는 열등국에서 보통나라가 된 것이지 그것으로 문화 선진국에 들어간다고 생각하면 웃음거리밖에 안 되요. 또 거기 나가야만 일류라고 생각하면 안되지요. 한국에도 화가가 있음을 알리는 식으로 가볍게 생각해야지, 올림픽처럼 떠들면 국제적으로 창피예요. 프랑스관에도 이브 클라인을 비롯해 일류작가는 대부분 안 나왔고, 영국대표 해밀톤은 대상후보로 지명되고도 수상식 전날 영국으로 가 버렸지요. 우리나라도 너무 난리 칠 것 없어요.
김 == 미술의 해를 맞아 우리나라 최초로 광주 비엔날레가 개최됩니다. 한국식으로 여유 없이 촉박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터라 내실없는 졸속행사가 되지 않을까 우려도 있지만, 광주라는 지역적 특성 때문에 서울에서 하는 것보다는 성공가능성이 높다고 보여지는데, 선생님의 의견은 어떠십니까? 더구나 선생님께서는 광주민주항쟁과 관련한 작품을 구상하고 있으시다고 보도되었는데 구체적 작업 계획을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백 == 나는 광주를 현대사와 관계시키기보다는 고인돌, 석조건축과 같은 광주의 문화유산에 관심이 있어요. 광주문화는 아이리스 켈틱 민족의 스톤헨지 전통과 유사한데, 켈틱족은 동양적인 민족으로 음악도 5음계이고 머리도 눈도 까맣고 체격도 적지요. 보이스의 켈틱제식도 그러한 맥락이고‥‥ 켈틱에서는 스톤헨지가 상징입니다. 광주의 석조문화가 선사시대의 스톤헨지와 관계가 있다고 생각되어 그것의 현대판을 만들 생각 중에 있지요. 나는 30년 동안 한국에 없었으니까 현대사에 대해 의견을 가질 권리가 없다고 생각해요. 광주에서 비엔날레를 하는 것은, 이왕 돈을 쓸 바에야 서울보다는 역사적으로 문화 도시인 광주가 낫다고 봐요. 광주에서 하는 것은 돌 하나로 새 두 마리 잡는 격입니다. 또 서울 올림픽, 대전 엑스포에 이어 광주가 순서지요. 비엔날레는 사실 세계에 열 개, 스무 개 있으니까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안 하는 것보다는 하는 편이 낫겠지요.
김 == 광주 비엔날레는 특히 미술의 지방확산과 함께 세계화라는 문제를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기회로 평가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백 == 사실 플럭서스는 지방분권을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예술의 성격에는 둘이 있는데, 하나는 남을 흉내내는 것, 즉 유행사조를 따르는 것이지요. 이것이 예술의 큰 부분이고 다른 하나는 차이를, 즉 토속적인 자기를 주장하는 거지요. 플럭서스가 성공한 것은 토속적 주체성을 내세운 것이었습니다. 주체성은 김일성이 만든 것이 아니었어요. 일본이 전쟁에 지고 나서 만든 것인데, 일본 책을 갖고 근대화한 북한이 일본의 주체사상을 본 딴 것이었지요. 요컨대 예술은 아이덴티티를 구하는 방법의 하나이며, 그것이 예술의 큰 기능입니다. 남의 유행에 동의하는 것과 아이덴티티는 상반된 개념이지요. 예술은 결국 모순입니다. 프랑스의 자크 랑은 지방분권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리옹 비엔날레 등을 통해 파리예술을 지방으로 전파하는데 성공했고, 그 덕인지 대통령 후보가 된다는 말도 있죠.

김 == 한국에 1995년부터 국립 영상예술원이 설립됩니다. 바야흐로 케이블 TV시대가 도래하고 있어 영상원의 역할이 크게 기대됩니다. 비디오 예술의 창시자로서 학교운영이나 교육방침에 대해 한마디 해주시지요.
백 == 조만간 우리나라에도 일본 등 외국 TV가 개방될 것이고 그것을 막을 재간이 없을 겁니다. 막으면 국민이 낙후되고 나라 생산성이 떨어지지요. 예를 들면 우리나라는 CNN과 MTV를 막고 있는데, 막으면 케이블 산업은 보호되겠지만 국민은 바보가 된다는 거예요. 미국이나 유럽은 CNN과 MTV로 살아가는데, 그에 따라 영상산업이 무지하게 발달하는 거지요.
케이블을 막으면 손해보는 것은 국민뿐입니다. 프랑스와 같이 우리나라도 결국은 외국방송 50%, 우리 것 50%로 낙착될텐데, 5할이 외국 것이라는 것은 큰 위협이지요. 유일한 길은 영화를 싸고 좋게 만드는 것입니다. 영화발전은 인구에 비례하는데, 우리는 일본에 비해 인구가 적습니다. 일본은 우리 인구의 3배니까 영화뿐 아니라 잡지, 신문 등 출판에서도 우세합니다. 미국은 인구도 많고 영어를 사용하는 나라가 많으니까 점점 잘 될 수밖에 없지요. 그렇다고 우리가 하소연만 할 것이 아니라 불리하지만 싸워야지요. 다행히 우리나라는 일본보다 케이블의 침투력이 높을 것으로 봅니다. 기존 방송사의 압력이 적은 셈이지요. 그런데 홍콩이나 싱가포르에는 뒤집니다. 그곳에서는 지금 MTV의 중국화가 이루어지고 있어요. 중국이 일본이나 한국보다 스타 채널, MTV가 많은데, 그것이 국민들의 사고를 교육시키는 것은 상당하지요. 미국사람과 동일한 프로그램을 보는 것, 즉 동시대의 TV를 보는 것이 디자인의 기본능력을 만들어 줍니다. 대원군 프로그램을 보면서 세계적인 디자인을 기대할 수는 없는 것이죠. 한국에 MTV가 들어오면 마약과 프리섹스를 퍼트린다고 당국이 우려하고 있고, 또 우리나라는 아직 공업국가라 국민들이 열심히 일해야하므로 MTV를 들여오면 안 되겠지만, 그렇다고 전혀 안 들여오면 항상 후진국으로 남는 거죠. 어디까지 풀어 주고 어디까지 막아야하는지 균형을 맞추는 일이 중요해요. 그것이 문화행정가의 일이지요.

김 == 최근 크리스티, 소더비 경매를 보면 피카소 판화 한 장이 100만 달러를 넘어가는 등 세계 미술시장이 다시 살아나고 있는 듯 합니다. 앞으로 국제 미술시장 전망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백 == 미술시장이 소생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 돈이 무지무지하게 많으니까요. 마약에서도 어마어마한 돈이 나오고, 주가가 올라가도 돈을 벌고 떨어져도 돈을 벌고, 돈이 점점 많아집니다. 한국만 해도 투자할 데를 구하는 돈이 무척 많아요. 자본가는 돈을 나누어 놓는 것이 투자방법인데, 3할은 증권에, 3할은 부동산에, 3할은 장사에 쓰지요. 월스트리트 저널도 돈을 숨기기 제일 좋은 것이 미술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그림만큼 유산상속에 좋은 것이 없지요. 저금이나 사업이나 다 상속세로 나가지만, 피카소만 갖고 가만히 있으면 아무도 몰라요. 수요가 클수록 돈은 올라가기 마련인데, 부자가 다른 데 돈을 숨길 데가 없는 한 미술은 올라가기 마련이죠. 골동은 재미도 없고 오를 대로 다 올라있고, 남은 것은 현대미술뿐입니다. 자본주의 생리에서 상속이 있는 한 미술값이 오르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미술시장에 문제없다고 봐요. 특히 한국은 일본보다 그림을 걸어놓을 공간이 넓은 셈이지요. 장소와 시간이 없으면 미술품을 사 놓을 수 없어요. 독일인들은 그림 사기를 그렇게 좋아하는데 그 까닭은 전쟁을 겪고 나니 돈은 전부 제로가 되고 그림만이 남더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림을 무지무지하게 사들이지요. 또 하나는 다이아몬드인데, 그 생산량이 너무 많아 10%만 판매하고 90%는 창고에 넣어두고 있어요. 카르텔을 형성해서 보호하니까 값이 유지되지요. 다이아몬드나 그림이나 모두 필수품이 아니면서도 고액에 팔리는 공통점이 있어요. 그리고 내 최초의 콜렉터도 앤트워프에 있는 다이아몬드 딜러였지요. 특권계급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필수품을 전부 갖고 있을 때 잉여 머리, 잉여 건강, 잉여 돈, 잉여 나이를 어떻게 쓰느냐가 대두됩니다. 보통 40세면 돈도 있고 에너지도 있어요.
 
그 때 남은 돈은 어떻게 쓰느냐 하는 것이 신귀족층의 문제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돈을 쓰되 낭비가 아닌 것으로서 미술이 가장 적당하다는 거예요. 돈을 쓰면서 돈을 벌면 더 좋은 거지요. 음악은 들을 때는 좋지만 듣고 나면 그 뿐인데, 미술은 그렇지가 않아요. 미술은 엑스타시가 있으면서도 물건으로 남아있고 다시 팔 수 있어요. 재미도 보고 돈도 버는 것이 미술의 속성이지요. 또한 그림을 살 때는 선택하는 묘미도 있어요. 키퍼를 사느냐 존스를 사느냐. 이우환을 사느냐 박서보를 사느냐 하는 자신의 갬블링이 있다는 거예요. 미술은 정말 잘 된 상품이지요. 폴 게티는 얼마나 구두쇠인지 마피아가 손자를 유괴해서 500만 달러를 청구했을 때 그 돈이 그에게는 내 돈 5불밖에 안 되는데도 그 돈을 주지 않았다고 해요. 마피아가 안주면 귀를 자른다고 협박했는데도 돈을 안 내주어 결국 그들이 귀를 잘라서 보냈어요. 그 손자는 살아서는 돌아왔지만 식물인간이 되었지요. 손자를 병신으로 만들면서 모은 돈인데 그가 죽고 남긴 것은 돈이 아니라 그가 지은 미술관이예요. 그런데 예술가는 폴 게티같은 콜렉터보다 더 위대합니다. 콜렉터는 예술가의 산물을 살 뿐이고, 그들이 살 것을 창조하는 사람들은 바로 예술가들입니다.
김 == 선생님께서는 실험영화와 미술을 전위미술의 명소였던 뉴욕의 앤솔로지 필름 알카이브를 앞으로 한국영화와 미술을 소개하는 발판으로 사용하실 계획을 가진 것으로 알고 있는데, 구체적인 방안은 어떤 것입니까?
백 == 앤솔로지 필름 알카이브는 아직 그 권위가 남아 있어 한국영화 상설관으로 유용하리라 봅니다. 알카이브를 임대하여 매주 일요일 3시부터 10시까지 한국영화의 날로 정하여 코리안-아메리칸의 모임장소로 만들고, 하루에 3가지 영화를 상영하면 타산도 맞고 한국영화도 선전이 될 것입니다. 문제는 좋은 영화를 만드는 것이지요. 알카이브 극장은 하루에 백 명은 관람하니까 보배지요. 그들 모두 뉴욕의 인텔리들이지요. 1층 로비를 조명시설을 해서 갤러리로 꾸며, 기존의 갤러리가 있는 지하공간과 함께 활용하면 전시장소로서 활용가치가 있을 겁니다. 잘하면 수지도 맞고 한국문화를 전파할 수 있는 좋은 기회지요.

김 == 한국 미술계는 미술의 해로 들떠있는데 특별히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지요.
백 == 우리나라 미술은 시장도 있고 재주도 치어 장래가 있습니다. 그러나 정보가 너무 약합니다. 앞에서도 디자인 이야기를 했지만 디자인에서 문제되는 것은 정보입니다. 디자인이 좋으냐 나쁘냐 또는 세련되었느냐가 문제지만 시대감각에 맞느냐가 더욱 중요합니다. 즉 패션 감각이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디자인의 우수성은 정보력에 달렸습니다. 디자인은 에스테틱+패션이고, 패션은 곧 정보이지요. 정보력 없이 에스테틱만 갖고는 경쟁이 안됩니다. 우리는 일본보다 정보력에서 많이 처져있지요. 그러니 잡지, 신문도 비교가 안됩니다. 미술의 해에 무엇보다 정보력을 넓히는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보는 내버려두고 미술만 밀어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 내 주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