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체게바라가 그의 아이들에게 보낸 편지
만일 너희들이 어느 날 이 편지를 읽고 있다면, 그것은 내가 더 이상 너희들 곁에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너희들은 나를 거의 기억하고 있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가장 작은 아이는 나를 전혀 기억하고 있지 않을 것이다. 너희들의 아버지는 그의 믿음에 따라서 행동하였고 확실히 그의 신념에 충실하였던 한 인간임을 기억해다오. 나는 너희들이 훌륭한 혁명가들로서 성장하길 바란다. 아버지는 너희들이 자연에 깃든 신성한 힘을 이해하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하길 바란다. 독립하기 위한 투쟁이 중요함을 기억해다오. 그리고 우리들은 각자, 우리들 자신들로서는 가치없는 존재들임을 기억하거라.
무엇보다도, 항상 전 세계의 어떠한 지역에 어떠한 사람들에 대한 부정을 느낄수 있도록 노력해다오. 그것이 혁명가의 가장 아름다운 품성이다. 나의 사랑스런 작은 아이들이여. 나는 항상 너희들을 다시 만나 너희들을 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정말로 진실한 입맞춤을 그리고 아버지의 포옹을 너희들이 어디에 있든지 어느 곳을 어느 시간에 살아가든지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알베르토 코르다 영웅 게릴라 버전 1 1960년
이 사진은 마르크스주의자 혁명가 체게바라의 사진작가 알레르토 코르다에 의해서 촬영된 유명한 사진이다. 이 사진은 여러 작품으로 바뀌면서 세계로 전파되었다. 체게바라의 가장 유명한 포스터 붉은 체게바라는 이 사진으로부터 비롯된 작품이며 앤디 워홀의 체게바라 작품 역시 이 사진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이 사진을 촬영할 당시 알베르토 코르다는 체게바라의 순간적인 얼굴의 표정에 매료되었다. 순간적으로 잡힌 이 순간의 체게바라의 얼굴에서 발견되는 "체게바라의 개성, 단단함, 냉정한 금욕주의, 굳은 용기와 결심"이 이 사진속으로 녹아들었다.
알베르토 코르다의 이 사진은 20세기의 가장 유명한 사진이 되었다. 이 사진 근처에 녹아들어있는 체게바라의 굳은 용기와 결심, 자유에 대한 호소는 다른 여러 예술작품으로 바뀌며 세계로 전파되었다. 이 사진은 다른 작품으로 인쇄되거나 디지털화되었으며 실크스크린으로 만들어졌고 조각작품으로 바뀌어서 제작되거나 그림으로 스케치화되었다. 전 세계에서 혁명과 투쟁이 있을때면 이 사진은 신비스런 모습을 띄고 나타나게 되었다.
"나는 이 사진을 바라볼 때 마다 여전히 큰 충격으로 깜짝 놀라고는 한다. 이 사진의 느낌은 내 영혼을 강하게 뒤흔들어 놓는다."
알베르토 코르다 영웅 게릴라 버전 2 1960년
1960년 3월 5일, 피델 카스트로는 폭발로 죽은 100여명의 쿠바인들을 기리기 위해서 추도식을 가지고 있었다. 이 시간 쿠바의 산업부 장관이었던 체게바라와 체게바라의 사진작가였던 알베르토 코르다는 같은 시간에 함께 있었다. 여러명의 사람들과 피델 카스트로와 함께 있던 체게바라의 순간적인 표정을 알베르토 코르다는 놓치지 않고 포착했다.
"체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연단 뒤에 서있었다. 그러나 잠시동안 앞부분에 빈 공간이 생겨났고 체의 모습이 드러났다. 우연하게도 체는 나의 시야에 들어오게 되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그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야 한다고 느끼게 되었고 나는 바로 그의 모습을 사진으로 포착하게 되었다."
그 시간에 알베르토 코르다는 체게바라 뿐만 아니라 같은 자리에 있었던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의 모습도 사진으로 찍었다.
"내가 찍은 이 사진에는 체게바라의 눈이 포착되었고, 그 순간 그의 눈에는 미스테리한 어떠한 신비한 느낌이 있었다. 그 눈에는 신비한 힘이 깃들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가 찍은 이 사진을 보았고, 그들도 알베르토 코르다와 같은 느낌을 가지게 되었다. 이 사진은 전 세계로 전파되었지만 알베르토 코르다는 이 사진에 대해서 어떠한 보수도 요구하지 않았다. 이 사진은 믿을 수 없을정도로 빠른 전파력을 지니게 되었으며 전 세계 곳곳으로 전파되어 다른 예술 작품으로 개발되었다. 알베르토 코르다는 이 작품이 다른 상업적 상품으로 바뀌며 전파되기를 원치 않았다. 그러나 이 작품이 상업적 상품으로 바뀌더라도 그것으로 인해 체게바라의 이미지가 더 빠르게 세계적으로 전파되었기 때문에 그러한 면에 대해서 알베르코 코르다는 긍정적으로 생각하였다. 체게바라의 사진이 상업적인 예술작품으로 바뀌더라도 그것으로 인해 체게바라의 영혼과 이미지같은 특색들이 새롭게 재생되며 전세계인들에게 빠르게 전파되었기 때문이었다.
체게바라가 피델 카스트로에게 보낸 편지 1965년 4월 1일
피델에게
이 순간 나는 많은 일들을 떠올린다네. 내가 마리아 안토니아의 집에서 너를 만났을 때의 그 순간을, 네가 나를 초대하던 그 순간을, 우리의 계획을 준비하던 그 모든 긴장된 순간들을 기억하고 있다네. 어느날 우리가 죽음의 순간에 겪어야 하는 것들을, 우리가 알아야 할 것들을, 그 모든 실제적인 가능성들을 우리는 준비해야 했었다. 우리들은 혁명에 의해 사람이 승리할 수도 패배하여 죽을 수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우리들의 많은 동료들이 승리로 나아가는 길 도중에서 떨어져 죽었다. 오늘날 우리들은 많이 성숙하였기 때문에 어떠한 일로도 충격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그러한 사건은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다. 나는 너에게, 나의 동료들에게, 너의 사람들에게 작별을 고한다. 나는 정당의 지도자, 장관으로서의 나의 자리, 지휘자로서의 나의 지위, 그리고 쿠바 국민의 신분에서 정식으로 나의 위치를 사임한다. 어떠한 법률도 쿠바로 나를 묶지는 않는다. 그 끈들은 나를 다른 곳으로 이끌고 있다.
나는 나의 지나온 삶을 회고하면서 나는 내가 혁명가로서의 승리를 이루기 위해서 충분히 성실했으며 헌신해왔다고 믿는다. 내가 겪었던 가장 큰 실패라면 험한 산맥 마에스트라에서의 첫번째 순간에 너에게 신뢰를 가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너와 함께 하면서 너를 지도자와 혁명가로서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기나긴 나날 속에 살아왔다. 그리고 내가 너의 길과 함께 걸어가는 것을 내가 너의 사람에 속한다는 것에 나는 자부심을 가졌었다. 그럼에도 카리브해에서 몇몇 날들은 슬픈 날들이었다. 나는 위험한 결정을 내리고 원칙에 따라서 네 사고방식과 일체가 되었던 것에 너의 길에 대해서 주저없이 용기있게 따라갔던 것에 대해서 나는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지금 쿠바가 아닌 세계의 다른 국가들이 나의 신중한 노력을 요구하고 있다. 나는 그 일을 해야 한다. 나는 내가 하는 일에 기쁨과 슬픔의 양면이 있음을 알고 있다. 나는 이 땅에 나의 희망의 가장 순수한 본질을 나의 친애하는 친구들을 위해 남겨둔다. 그리고 나는 나를 아들로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을 떠난다. 이 작별은 나의 영혼에 상처를 입힌다. 나는 새로운 전선들로 혁명가로서의 정신을, 의무로서, 신성한 의무를 이행하기 위한 신념을 이행한다. 내 신념이 이르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제국주의에 맞서 싸우기 위해서 나아간다. 이 신념은 상처의 가장 깊은 부위를 치료하는 것보다 더 많은 힘의 근원이다.
만일 나의 최후의 시간이 다른 하늘 아래서 머무른다면 나의 마지막 사상은 너에게 그리고 너의 사람들 아래 있을 것이다. 나는 우리들의 혁명과 외교 정책에 대해서 항상 확신하고 있다. 내가 존재하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내가 세계의 어느 하늘 아래 있던지 나는 쿠바 혁명가로서의 책임을 느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쿠바 혁명가로서 행동할 것이다. 내가 나의 아내와 나의 아이들에게 어떠한 물질적인 것도 남겨주지 않는 것에 대해서 나는 유감스럽지 않다. 나는 지금 행복하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나는 우리들의 사람들에게 그리고 너에게 말할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다. 나는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체게바라가 호세 E. 마르티 레이바에세 보낸 편지 1959년 2월 5일
친애하는 나의 친구여, 나는 기쁨으로 네 편지를 읽었다네. 우리들의 이웃들의 자유를 위하여 싸우기 위하여 네 관대한 제의에 대해서 만족한다. 미래에 네 기회가 다가올 때를 위하여 나는 네가 항상 깨어있는 상태로 있기를 바란다. 그 때를 위하여 미술 대학에서의 네 시간들을 잘 활용하기를 바란다. 우리들이 쿠바의 어떠한 훌륭한 필요성을 위하여. 나는 네가 쿠바의 훌륭한 목적을 위하여 한 몫을 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림을 위하여 네 자신을 바치기를 바란다. 네가 열심히 하고 있는 그 그림 그리기는 쿠바를 위하여 어떠한 가치를 지닐 것이다. 그림에 네 자신을 헌신하라. 나는 믿는다. 그리고 나는 약속한다. 나의 영혼에서 우러나는 인사를 바치며.
-- 체 게바라의 시
여명의 불의 예언자
전진하자,
여명의 불의 예언자들이여,
꾸불꾸불한 비밀의 길을 따라서 바람에 날아가는 솜털처럼,
네가 사랑하는 그 자유로운 초록의 대지로.
전진하자,
수 많은 부정에 대하여 보복하기 위하여,
반란군의 별들로 가득찬 우리의 얼굴을 앞세우고,
승리하거나 또는 죽기 위한 맹세로써.
최초의 발포가 들릴 때 그리고 대지가 깨어날 때,
소녀가 잠에서 깨어나는 것처럼 깨어나라,
우리들은 네 곁에 있을 것이다,
고요한 전사들로서,
우리들은 그곳에 있을 것이다.
네 목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올 때,
우리의 대지를 다시 만들자, 정의롭고 공평하게, 빵과 자유로써,
우리들은 네 목소리가 메아리치는 그 곳에 함께 할 것이다,
우리들은 그곳에 있을 것이다.
우리들의 자유를 겨누는 사나운 짐승이 우리의 측면에 상처를 입히는 그 날,
우리들은 너와 함께 할 것이다, 우리들의 자부심을 들으며,
우리들은 그곳에 있을 것이다.
선물과 훈장으로 무장한,
그들이 우리를 떨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우리들은 라이플과 총알들, 곤봉을 원한다,
그 밖에 아무것도 필요치 않다.
그리고 만일 라이플이 우리들을 공격하면,
우리들은 오직 쿠바인들의 눈물을 요청한다
전사들을 위하여 샘솟는 역사에 의해서 씻겨진,
시트들이 꾸불꾸불 춤을 추는 것처럼,
그 밖에 아무것도 필요치 않다.
알베르토 코르다
쿠바의 철도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난 알베르토 코르다는 1928년 9월 14일 태어나서 2001년 5월 25일 세상을 떠나갔다. 알베르토 코르다는 십대 시절부터 이미 사진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사진에 대해서 항상 흥미를 가지고 있었고 사진만이 열렬하게 그의 영혼을 잡아 끌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알베르토 코르다는 패션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는 사진뿐만 아니라 사진속에 깃든 여성적인 매력에도 매료되었다. 이러한 점은 사진작가라면 대부분 가지고 있는 특징으로 보인다. 비록 그 시대에 패션이 쿠바의 유행은 아니었지만 그는 아름다운 모델의 모습에 매료되었다. 그는 광고를 위한 사진을 찍는 것으로부터 그의 사진경력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의 사진은 패션 사진과 같은 특징이 보이는데 그는 젊은이들을 촬영하였고 그의 사진에는 정열과 열정의 느낌이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맨끝의 사진 - 체 게바라의 사진을 인화하는 알베르토 코르다
알베르토 코르다는 매주마다 쿠바 하바나에서 그의 패션 사진을 찍을만한 장소를 찾았다. 알베르토 코르다는 1959년 그 시대의 쿠바의 최고의 모델이었던 나탈리아 멘데즈와 사랑에 빠졌으며 그녀와 결혼하게 되었다. 쿠바에서 혁명이 일어났을때 그는 그의 사진술을 혁명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가치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피델 카스트로가 1959년 미국을 여행하는 동안 알베르토 코르다는 그와 함께 여행하게 되었다. 그는 미국의 노예 해방가이자 가장 위대한 대통령으로 불리는 에이브러햄 링컨의 커다란 동상을 바라보는 피델 카스트로의 인상적인 사진을 찍게 되었다. 위대한 지도자 앞의 한 혁명가의 사진이 그의 첫번째 정치적 사진이 되었다.
남은 그의 기간동안 알베르토 코르다는 피델 카스트로의 개인 광고 사진작가로 남아있었다. 알베르토 코르다와 피델 카스트로는 좋은 친구였으며 그는 피델 카스트로와 함께 어울리는 체게바라의 사진을 찍게 되었다. 하바나 항구에서 폭발로 죽어간 쿠바 시민의 추도식에서 찍은 체게바라의 사진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체게바라의 사진이 되었다. 우연히 포착된 이 사진에는 체게바라가 지닌 모든 감동적인 영혼의 힘이 깃들어 있다. 체게바라가 볼리비아에서 혁명 활동을 벌이고 있는 동안 이 사진은 인쇄되었고 전 세계적으로 전파되기 시작했다. 오늘날까지 이 유명한 체게바라의 사진은 수 많은 셔츠의 로고로 또한 포스터들로 책의 표지로 장식되여 전 세계로 전파되었다. 알베르토 코르다는 전 세계를 위하여 놀랄만한 작업을 해냈으나 그는 매우 겸손한 사람이었다. 알베르토 코르다의 사진작업도 사진작가로서의 알베르토 코르다도 체게바라와 함께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체 게바라같은 사람은 이념을 떠나서 시대를 막론하고 어느 직업 분야에나 필요한 사람입니다. 체 게바라와 레닌의 이념을 떠나서 그들의 영혼을 좋아합니다. 무언가 뚜렷하고 반짝반짝하면서 몽롱한 그들의 꿈을 꾸는듯한 눈빛을 좋아합니다. 자신의 목적을 현실에 실현하는 사람들의 특징을 보자면 세가지가 있어요. 용기, 불굴의 결심, 끈기. 또 한가지가 있다면 상상력과 열려있는 개방적인 자유로운 사고방식이 있겠죠. 그들의 자유로운 사고방식은 타의추종을 불허합니다. 예측할 수가 없으며 신념은 뚜렷하나 자유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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