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즐로 모호리- 나기(Moholy - Nagy 1895~1945)

현대사진의 출발점에서 라즐로 모호리-나기(Moholy - Nagy 1895~1945)의 이론적, 실천적 역할은 자못 크다.

그는 새로운 사진시각 운동(New Vision)의 중추적인 인물이며, 조형 예술의 영역 전반 즉, 회화, 조각, 건축, 영화, 연극 등에 걸쳐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는 처음에 대학에서 법률을 공부했으나,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 후 헝가리의 ‘MA’라는 전위예술 운동에 참가하여 구성주의 경향의 그림들을 그리고 있었다.

1919년 헝가리에 혁명이 일어나 소비에트 정권이 수립되자 그는 1921년 베를린으로 들어가 때마침 이곳에서 활동하고 있는 구성주의 자인 엘 리츠키(E, Lissitzky)와 다다이스트인 아르프(Arp, Hans)등과 교우하면서 새로운 예술운동에 동참하였다.

그는 1920년 초부터 사진에 손대기 시작했는데 그 초기의 일이 ‘포토그램(photogram)’ ‘포토 몽타즈(photomontage)’ ‘리얼 포토(Real-photo)’의 세 가지였다. 그는 사진의 예술적 가능성을 실험하면서 사진의 본질을 ‘광선’ 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러한 인식에서 출발한 모홀리-나기의 사진작업들은 기존의 사실적인 재현에 충실한 사진과는 매우 다른 관점을 제시한 것이다. 즉, 그는 이러한 일련의 작품들을 발표하면서 사진의 아방가르드적(avantgarde)인 경향을 선보이기 시작한다.
무엇보다도 우선 아방가르드란 대체 무엇인가? 그 용어 자체를 따져봐야 하겠다. 아방가르드는 프랑스 군대 용어에서 비롯된 말이다. 이는 적진에 최우선으로 배치된 전위 부대를 지칭하는 말이다. 그럼으로 예술에서 아방가르드란 진보적인 전위 예술을 가리키는 용어로 불리어지고 있다.

그러나 사실 1913년경에는 아방가르드가 진보를 지향하는 예술적, 정치적 운동을 지칭했었고, 더 나아가서는 혁명과도 결부되었던 이 운동은 애당초 진보적 좌파에 결부되었지만, 그 강도가 점점 약해져서 1930년 이후부터는 좌파, 우파를 가리지 않고 적용되었다. 미술평론계에서 그 용어를 채택한 것은 제1차 세계대전 직전이다.
아방가르드를 하나의 개념으로 고정시키기는 곤란하다. 왜냐하면, 그 운동은 매우 다원적이기 때문이다. 당시의 예술가들은 고전적인 예술의 관념에서 벗어나, 격동하는 현대화의 물결에 과학과 산업을 그들의 작업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여서 문화적 의미를 부여하고자 했다. 사진도 여러 요인들 및 다양한 계획과 관계가 있었다. 번번이 모순되기는 하지만, 사진가들은 당시주류문화의 현대화 물결에 참여하고 또 예술가 집단의 신뢰할 만한 잡지에 그들의 작업을 게재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예술에서 아방가르드 운동들은 시장경제에 편입될 수 있는 현대문화를 생산하는 집단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화랑을 개업하고 잡지를 펴내고 장식미술전을 조직했었다. 그들은 프랑스의 살롱 전 같은 국가기관 전 보다는 민간주도의 상업적 통로를 이용했다.

독립적이고 기업적이며 자유로운 생각을 지녔던 이들은 상업화랑을 찾고, 잡지를 구독하며, 아파트를 꾸미는 새로운 소비대중에 맞춰 작업하면서 시장에 일대 혁신을 가져왔다.

아방가르드는 이런 대중의 관심을 끄는 방식으로 실현되었고 또 현대화의 노정에 있던 문화를 뒤흔들어놓았고, 그 문화에 새로운 면모를 보태었다. 모더니즘을 뛰어넘기 위해서 기존의 현대적 문화를 일신시키려는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은 그 과정에서 사진의 문화적 위상도 뒤엎어버렸다.

새로운 20세기의 세계관과 일치하는 새로운 차원의 시각을 모색하는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은 이제 것 르네상스이후 줄곤 내려오던 근대적 세계관을 극복하고자 했다. 사진은 정확히 근대적 시각체계의 시스템 속에서 탄생한 시각이다.

하지만 사진은 발명과 동시에 근대적 세계관의 삶의 방식을 흔들어 놓았고, 전통적 예술개념의 관념을 의문케 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은 바로 이점을 잘 알고 있었고, 그들은 사진이 자신들의 이념을 정당화시키기 위한 훌륭한 도구가 될 것으로 알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인쇄 매체의 발달과 사진이 가장 널리 보급된 바로 그 시점에서 아방가르드 운동의 한가운데 자리 잡게 된다는 점이나, 또 아방가르드 사진이 출판사진의 기계적인 복제 없이는 실재할 수 없었으리라는 점은 대단히 역설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아방가르드 운동권이 사진에 관심을 쏟았던 까닭은 사진이 현대회화의 형식을 모사했기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로, 매체적 요구에 부응하는 것으로서 사진을 현대적이며 단순한 자료로 여겼기 때문이다.
 
제1차 세계대전 직전에 사진은 새로운 차원, 즉 모더니즘 자율적 미학에 바탕을 둔 새로운 시각에 들어섰다. 이때부터 사진은 거의 20년 이상, 아방가르드의 핵심적 일원이었다. 미국에서는 스티글리츠를 중심으로 한 모더니즘 사진의 대두로 진보적 경향을 보이고 있었으나, 그들이 직접적으로 아방가르드 운동에 참여 한 것은 아니다.

유럽에서의 사정은 조금 다르다.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이 사진에 협조를 구했던 것이다. 그들은 현대성이란 현대적 통신수단을 활용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예술가들은 현대적인 기술과의 결합을 시도하면서 자연스럽게 사진이라는 매체에 주목하게 된다. 그 대표적인 예가 다다이스트들의 사진작업과 미래파의 ‘더 스틸’ 그리고 독일에서의 ‘바우하스’에서의 사진교육의 등장이 아닌가 싶다.
 
모호리-나기(Moholy - Nagy)는 베를린으로 건너온 뒤, 1923년부터는 발터 그로피우스가 주도하는 바우하우스에서 금속 공방을 맡아서 가르쳤다. 구성주의적 계시로 가득 찬 그의 초기 사진작업들은 그보다 앞선 1922년의 것들이고, 특히 그가 유명해진 것도 사진작품을 통해서였지만 그가 바우하우스에서 사진을 지도한 적은 없었다. 사진은 1929년에 그가 퇴임한 다음, 발터 페테르한스의 한 과목으로 채택되었다.

그러나 바우하우스는 나치의 탄압으로 폐교하고 1937년 미국 시카고에서 뉴 바우하우스가 만들어진다. 이때 그는 이곳에 교장으로 취임해서 본격적으로 사진의 조형성에 대해서 실험하는 교육 커리큘럼을 도입한다. 미국에서의 뉴 바우하우스 는 미국의 현대사진의 한 축으로 이후 해리 캐러한(Harry Callahan), 아론 시스킨트(Aron Siskind)등 뛰어난 사진가들을 배출한다.

바우하우스가 예술과 기술의 결합을 통한 건축의 구성과 실내장식에 모든 총력을 기울였듯이, 모호리-나기는 바우하우스의 사진을 보다 광범위한 문제, 즉 현대 산업문화 속에서의 이미지의 위상, 새로운 이미지의 기능 및 그 불가분한 기능 전환 등의 문제의 핵심으로 삼았다. 따라서 그의 사진 작업도 현대생활의 새로운 조건에 부합하는 새로운 재료 및 그 접합에 대한 바우하우스의 다른 연구와도 직접적으로 연계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연구를 받쳐주는 지주로 1925년에 [ 회화, 사진, 영화 ]라는 책을 출판한다.
 
이 책에서 모호리- 나기에 따르면 “사진은 선택 가능한 수많은 현대 이미지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사진의 특별한 능력은 그 고유성, 즉 오직 빛의 작용 덕분에 일순간에 기록되는 객관적 이미지를 낳는 잠재력에서 나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따라서 그는 다음과 같은 가설을 내놓았다. "우리는 사진기와 더불어 객관적인 시각의 출범을 보게 된 가장 믿음직한 수단을 확보했다. 우리들 각자는 예상되는 주관적 입장에 다다르기에 앞서, 그 고유의 법칙에 의거해서 설명될 수 있는, 시각적으로 사실적이고 객관적인 것을 보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수 세기 동안 변함없던, 또 바로 그렇게 화가들이 우리의 시각에 각인시켜놓았던, 상상적이자 회화적인 구조를 제거하고자 한다. 한 세기 동안의 사진과 20여 년간의 영화를 거치면서 우리는 그런 풍부한 변화를 체험했다.

‘우리는 세계를 전적으로 다른 눈으로 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아무튼 오늘날 그 총체적 결과는 한권의 시각적 백과사전이라고 할 만한 성공을 거두고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는 체계적으로 생산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삶에서 ‘새로운 관계를 창조 한다’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모호리-나기의 책은 바로 이런 입장에서 쓴 기본 지침서로서 그 출발점이 위와 같은 새로운 관계의 창조임을 독자에게 주지시키고 있다.
 
 이런 기획에 따라서 모호리-나기는 1922년에 포토그램(photogram)이라는 실험에 착수했었다. 이것은 인화지 위에 물체를 올려놓고 그 전체에 빛을 쏘여서 얻은, 직접 구어 낸 것과 다름없었다.

포토그램은 X선 사진술과 외관상 특히 과학적 이미지로서 유사한 특성을 보이는데, 단순한 물체 이상으로, 마치 생명 없는 물체의 내부에 무엇인가가 살아 있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그는 또한 사진의 시각을 인간의 육안과는 다른 차원의 시각으로 인식하고, 위에서 내려본 시각, 아래서 위로 혹은 두 이미지의 몽타즈효과 등 다양한 시각을 실험한다.
 그가 찍은 사진작업들은 기본적으로 새로운 차원의 시각을 발견하고자 하는 시도였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사진이 대상을 정확히 재현하거나, 혹은 기록과 보전을 위한 사진들과는 다른 것이었다.

특히나 그가 사진의 본질을 ‘광선’으로 인식 했다는 점은 결과적으로 이제까지 지엽적으로 부분적으로만 바라보던 사진을 기본적이고 근원적인 입장에서 바라보게 했다는 점이다.

그가 사진에 걸었던 희망은 아마도 사진기에서 초인간적인 제 3의 눈, 새로운 시각에 대한 비전이었을 것이다.
 
 
글: 이영욱 (중국 연변대학교 예술대학 사진과 교수 bonda@intize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