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cal Color, 서울-이윤환

13년 전 시청 앞 지하철역에서 처음으로 지하철을 탔습니다. 시커먼 굴에서 아귀같이 고함을 토해 내며 튀어나오는 지하철에 얼마나 놀랐던지요. 승강장에서 차량으로 첫 발을 내디뎠을 때 덜컹하던 진동에 움찔했습니다. ‘아! 촌놈’ 속으로 태연한 척하기도 힘들어 금방 내리고 말았습니다. 고작 두 정거장 지난 을지로3가였습니다. 그리고 지도를 펼쳤습니다. ‘이거 뭐야 얼마 오지도 않았잖아’ 이후 이틀간의 서울 여행은 걸어서 다녔습니다. 서울역에서 경복궁까지 다시 창덕궁을 거쳐 청계고가를 따라 동대문까지… 참 많은 것을 보았습니다. 시간이 지나 서울에 직장을 구해 삶의 터전을 잡았습니다. 출퇴근 시간에 지하철만한 게 있나요. 두더지 같다는 생각을 왜 안했겠습니까. 먹고살아야 하는데, 그때 서울은 직장 생활만큼 단순하고 무덤덤한 빛바랜 도시였습니다. 내가 알아야 할 색은 지하철 노선별로 빨강, 초록, 오렌지, 파랑이면 충분했습니다. 그러던 늦가을 어느 날 ‘창문 너머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겠지요’란 노래가 흘러나오던 버스를 탔습니다. 지는 햇볕에 누렇게 익어 버린 광화문을 보았는데 정말 따뜻하고 아름다웠습니다. 서울의 색은 한 색깔에서 다른 색깔로 갈아타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그 날의 그 빛은 나의 ‘도시 색맹’을 치유해 주었습니다. 시간이 흘러서 지금까지 서울의 해질녘 빛에 천착하는 이유도 그때 느꼈던 강렬함 때문인 것 같습니다. 광화문이 제 위치를 찾기 위해 공사 중입니다. 제 위치를 찾은 광화문은 또 어떤 색을 뿜어낼까요. 서울도 자신의 색을 점점 찾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나의 사진도 나의 스타일도 스스로의 색을 찾아낼 것입니다.

interview

1 사진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와 촬영 기간은?
2 사진을 통해 무엇을 보여 주고자 하나?
3 주로 사용하는 장비를 소개해 달라.
4 인물 촬영 시 사전 동의를 구하는지?
5 촬영 후 곤란한 상황을 겪은 적은 없는가? 그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대처했는지?
6 자신만의 촬영 노하우가 있다면?
7 평균 촬영 양과 빈도수는?
8 추천 작가나 사진집이 있다면?
9 자주 가는 장소를 몇 군데 소개하면?
10 이제 막 사진을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이윤환]


1 2년 전 브루스 데이비슨Bruce Davision의 사진집 『Central Park』를 보고 서울의 공원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공원과 거리 모두 공공장소지만 공원은 울타리가 있고 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처음 공원을 찍고자 했을 때는 내 생각이 고정된 틀에 묶여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큐멘터리 사진에는 사회적 의미가 있어야 하고 사진가의 개인적 철학이 반드시 담겨야 하며, 그러기 위해 사진가는 미리 그것들을 갖추고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그런 생각 말이죠. 작년 5월, 우연찮게 데이비드 알란 하비David Alan Harvey와 만났습니다. 그가 가져온 사진집 『Divided Soul』을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같이 자리했던 친한 형님 한분이 “이 사진은 무슨 의미가 있어서 찍은 것이죠?”라고 물었습니다. 파란 클래식 차가 있고 그 왼쪽에 큰 악기를 멘 남자가 지나가는 쿠바 해변의 사진이었습니다. “특별한 의미가 있거나 아니면 어떤 의미를 담기 위해 찍은 사진이 아니다”라고 하비는 말했습니다. 그때까지 사진을 찍기 전에 챙기려 했던 ‘반드시, 미리, 의미가 있어야’ 등의 개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다소 의문은 들었지만 머리는 훨씬 가벼워졌고 가슴이 뜨거웠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면서 공원의 울타리를 뛰쳐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울타리 너머 서울의 거리가 널려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찍고 있습니다.


2 나의 거리 사진들은 좀 더 큰 주제로 Local Color에 포합됩니다. 중요한 것은 ‘지역’과 ‘색’입니다. 지금까지 집중한 도시는 ‘서울’입니다. 찍다 보니 거리 사진이 90% 이상을 차지하더군요. 거리 사진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서울의 맑고 쨍한 날에 해가 뜨기 시작하거나 지기 시작한 시간대의 거리’입니다. 또, 서울이 독특한 색채를 가진 도시라는 것을 보여 주고 싶습니다. 경상도 촌놈이 처음 서울에 발을 내디뎠을 때 서울은 삭막했습니다. 살다 보니 서울이 정말 다양한 표정과 색상을 가지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되었습니다. ‘회색 도시 서울’의 이미지를 깨면서 그 반대의 증거를 수집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3 올림푸스 E-1과 14-54mm 렌즈를 사용합니다. 필름은 코닥 E100vs를 좋아합니다. 만약 이 작업을 필름으로 했다면 미놀타 707SI에 E100vs를 사용했을 겁니다.


4 거리 사진을 찍을 때는 한 곳에 오랫동안 머물면서 피사체와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고자 노력합니다. 사람들은 주로 렌즈의 옆으로 스쳐 갑니다. 그들에게는 나 또한 지나치는 사람일 뿐이죠. 하지만 늘 머물러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먼저 그들에게 말을 걸지는 않습니다. 렌즈를 들이대는 것 자체가 대화의 시도입니다. 호의든 악의든 그들은 관심을 가지며, 이것저것 물어 오기도 합니다. 호의에는 호의로 답하고 악의에는 무감각하게 대응합니다. 지독한 악의가 느껴질 때는 피하고 맙니다. 근데 대부분 간격을 유지한 채 오래 머물면 그들은 렌즈와 대화를 하더군요. 간격 유지가 힘들거나 찍히는 분이 나를 의식하면 사전에 허락을 구합니다.


5 촬영 후 곤란한 경우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촬영하는 동안에 곤혹스런 경우는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찍히는 것에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동의했는데, 딱 한 분이 찍지 말라며 방해해 난감했지요. 이럴 때는 하나의 부정적인 목소리가 전체 분위기를 지배합니다. 그 목소리에 대항해서 내 상황을 이해시키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대처 방안은 그 분의 기분을 봐서 계속 찍거나, 자리를 피하고 다른 기회를 보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만약 거리 사진이 아니라 그들의 삶 깊숙이 들여다보는 작업을 하고 있었더라도 대처 방안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6 ‘Local Color, 서울’ 작업을 하면서 지하철보다 버스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6년의 서울 생활에서 아까운 것이 있다면 지하철을 탔던 시간입니다. 지하철을 타면서 물리적인 시간을 많이 아끼긴 했겠지만 지금의 서울의 거리를 찍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 교통수단이었거든요. Local Color와 거리 사진 작업에 한정 짓는다면 찍는 시간보다 장소와 시간을 고르는 데 훨씬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버스를 타면서 예전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얻게 되었습니다. 내가 찍는 사진에서 중요한 점은 한 지점에 오래 머물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빛이 원하는 위치에 오기 전에 말입니다. 그 한 지점과 그에 맞는 빛을 찾기 위해서는 많이 돌아다녀야 합니다. 데이비드 알란 하비는 “사진가는 빛을 쫓아가지 말고 빛이 사진가를 찾아오게끔 해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이런 상식적인 것 말고 특별한 기술적 노하우는 없습니다. 스스로 지금 내 사진은 ‘우연의 연출’이라고 생각합니다. 방법적인지 심정적인지는 모르겠지만 장소를 발견하고 그곳에 가면 영화 감독 같은 자세로 촬영합니다. 한 장소에서 하나의 장면을 찍기 위해 무수한 NG 컷을 날립니다. 머릿속에 어렴풋하게 그 장소와 어울리는 그림을 그려 놓는 것이죠. 그렇게 해서 찍힌 사진은 우연이면서도 연출된 사진이 되는 거죠.


7 위에서 말한 촬영 조건이 모두 만족스러운 날이 그리 자주 오지는 않습니다. 촬영 포인트만 잡으면 1~2시간 동안 보통 300컷 정도 찍습니다.


8 데이비드 알란 하비의 『Divided Soul』입니다. 거리 사진을 한다면 배울 점이 많은 사진집입니다. 거리 사진과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지만 추천하고픈 것은 낸 골딘의 『I'll Be Your Mirror』입니다.


9 서울의 신촌 뒷골목, 충무로 고층 빌딩 옥상, 용산 전자 상가, 홍대역 근처를 자주 갑니다.


10 자신의 성격대로 사진을 찍어야 하고 그 스타일이 유지되면 자신의 것이 됩니다. 사진 때문에 기본 성향까지 바꾸면 안 됩니다. 저는 컬러 영상 세대로 흑백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컬러만을 찍습니다. 사람들에게 깊이 다가가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그들과 어느 정도의 간격을 유지합니다. 비오는 날보다는 맑은 날을 좋아합니다. 누구에게나 이것보다는 저것이 더 좋다거나 편한 것이 있는데 거리에서 렌즈를 들이댈때도 자신의 성향에 맞는 조건들을 스스로 만들어 두면 좋습니다. 공원 사진을 찍을 때처럼 철학과 사회적 의미라는 조건을 먼저 생각했다면, Local Color 작업은 이미 포기했을 것입니다. 철학이나 사회적 의미는 관심만 놓치지 않고 있다면 천천히 드러납니다. 카메라를 메고 거리로 뛰쳐나가게 하는 것은 자신과 주변 환경과의 교감입니다. 오늘 날씨가 좋습니다. 이제 Local Color 사진을 찍으러 갈 시간입니다. 더 늦으면 빛을 쫓아 다녀야 하니 곤란합니다.


이윤환 | 프리랜스 사진가 stopnlook.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