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14분간의 기록_윤종현


14분! 지하철 동대문운동장역에서 충정로까지 걸리는 시간은 단 14분이다. 난 매일 14분 동안 지하철 안에 머무른다. 늘 규칙적인 공간과 시간 속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마주치며 그들을 카메라 앵글에 담는다. 14분 동안 나에게 지하철은 찰나이자 영원이며, 시간의 단편이자 영원의 고리다. 그 14분이라는 시간은 또 다른 삶의 절박과 연민으로 드러난다. 인간의 삶이 단 14분뿐이라면 어쩌겠는가. 그 삶이 지하철이라는 속도의 기계 속에 있다면 그들과 함께 무엇을 나눌 수 있을까? 그 속에서 그들은 나의 절박함을 바라보고, 나 또한 그들에게서 연민을 느끼게 된다. 나의 절박함과 그들의 연민은 언제나 실상과 허상 사이에서 부유한다. 진짜가 있으면 가짜가 있고 복사가 있으면 복제가 출현하며, 그들과 난 야누스의 얼굴처럼 서로의 감정과 행동을 통한 새로운 기호를 재현해 낸다. 지하철 사진에는 객관적 사실과 주관적 진실이 항상 공존하며, 현실 속 14분이라는 주관적 시각을 통해 풀어내는 서울 속 24시간과 조우하게 된다. 그리고 당신은 내 사진을 통해 실재하는 시간과 부재하는 시간을 동시에 만나게 될 것이다. 당신과 나의 지하철에서의 14분은 순간이며 영원이다.

interview

1 사진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와 촬영 기간은?
2 사진을 통해 무엇을 보여 주고자 하나?
3 주로 사용하는 장비를 소개해 달라.
4 인물 촬영 시 사전 동의를 구하는지?
5 촬영 후 곤란한 상황을 겪은 적은 없는가? 그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대처했는지?
6 자신만의 촬영 노하우가 있다면?
7 평균 촬영 양과 빈도수는?
8 추천 작가나 사진집이 있다면?
9 자주 가는 장소를 몇 군데 소개하면?
10 이제 막 사진을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윤종현]

1 나에게 주어진 환경에 맞게 작업을 해야 했기에, 직장인으로서 항상 마주치는 곳을 촬영하게 된 것 같습니다. 특별히 시간을 내어 촬영하지는 않습니다. 늘 지나는 곳이나 생활하는 주변에서 촬영을 하게 되니 거리이거나 공간이거나 상관없이 촬영을 해 왔던 것 같습니다. 지하철 촬영은 3년 정도 촬영해서 마쳤습니다.


2 사진은 사실을 기반으로 진실을 표현하려 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사실이라는 것은 객관적이고, 진실은 주관적이라 생각합니다. 눈에 보이는 사실을 작가의 주관에 의한 새로운 진실로 재현하기에 내 사진을 통해서 눈에 보이는 현상, 기호, 사회적 코드, 모습들이 새로운 진실을 지시하고 재현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모습들을 통해 사회 현상을 대변하거나, 소통합니다.


3 촬영 환경에 적합한 카메라를 만나기가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지하철 촬영에 사용된 카메라는 캐논 EOS-1, EOS-5D, EOS-1D Mark2N, EOS-1Ds, 콘탁스 G1, 리코 GR DIGITAL 정도입니다. 처음엔 슬라이드 필름을 사용했으며 현재는 디지털로 전환했습니다. 지하철은 공간 제약이 심해 SLR 카메라의 크기와 소리 때문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느 정도 적응했고, SLR 특유의 순발력 때문에 결국엔 SLR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현재는 캐논 EOS-1Ds를 사용하고 있고, 주로 사용했던 렌즈로는 16-35mm, 24-70mm, 24-85mm, 24-105mm, 24mm, 50mm를 사용합니다. 지하철이라는 환경에는 좋은 렌즈도 중요하지만 작고 기동성이 뛰어난 렌즈가 좋은 것 같습니다.


4 지하철 사진에서 허락받은 사진은 몇 장 안 됩니다. 워낙 순간적으로 진행되고, 만원 지하철에서 촬영 전 허락을 받는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지하철 밖에서는 허락을 먼저 받고 촬영하는 경우도 있고, 촬영 후 허락을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5 지하철 촬영 때는 편안한 마음으로 촬영한 적이 없습니다. 늘 긴장해야 하며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촬영 후에도 신중해야 합니다. 한번은 촬영 중에 대상자가 아닌 주변 사람에 의해서 심한 폭력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 그럴 때는 같이 싸우기보단 그 상황을 빨리 정리하고 신분과 촬영 의도를 밝혀서 수습하는 것이 좋습니다. 제한된 공간에서 촬영하면 곤란한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 당연하긴 하나 카메라를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치한 취급을 당할 때는 맘이 상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겪어야 할 과정이라 생각하고, 그런 과정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6 생각하고 찍진 않습니다. 말 그대로 손가락 끝으로 생각합니다. 짧은 시간 내에 촬영해야 하기 때문에 생각하고 촬영하면 이미 피사체는 지나가 버립니다. 지하철 촬영을 3년 정도 하면서 체득한 것은 파인더를 보지 않고도 사진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감으로 촬영하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늘 같은 공간에서 촬영을 하다 보면 보지 않고도 렌즈의 화각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만원 지하철에서 이 노하우가 가장 유용했습니다.

7 지하철 촬영은 지금까지 약 2만에서 3만 장 정도를 촬영했습니다. 3년 동안 찍은 사진으로는 그렇게 많은 양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8 모리야마 다이도의 『BUENOS AIRES』, 『71-NY』, 『森山"E新宿"E荒木』, 『DAIDO MORIYAMA REMIX』란 사진집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모리야마 다이도의 사진집을 볼 때마다 새로운 자극을 받아서 자주 보고 있고, 매그넘 작가들의 사진집과, VII의 작가들의 사진집도 추천하고 싶습니다.


9 지하철 촬영을 시도해 보고자 하는 분이 있다면, 아침 러시아워 시간을 권해 주고 싶습니다. 만원 지하철 속에서 촬영을 하다 보면, 색다른 경험과 더불어 사람 사는 냄새가 어떤 것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10 우선 찍어야 합니다. 생각만 한다고 사진이 되진 않습니다. 멀리 나가서 무언가를 찾으려 생각하지 말고 내 주변과 항상 접하는 곳을 찍어 보길 권합니다. 한 곳을 계속 찍다 보면 좀 더 깊이 있는 사진과 생각이 자리 잡게 되고, 테크닉 또한 늘어납니다. 성실보다 좋은 테크닉은 없다고 생각하며 보는 만큼 시야가 넓어지고, 자신의 사진에 대해서 객관적인 눈을 가지게 됩니다.


윤종현 | 프리랜스 사진가&웹 서비스 기획자 offzine.byu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