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영상의 마술사, 백남준
 
                                                                                              김홍희 (현대미술)
 

해프닝과 비디오아트는 서로 다른 예술 형식들이지만, 백남준에 있어서는 하나에서 다른 하나로 귀결되는, 혹은 하나가 다른 하나의 연장선상에 놓이는 총체적 과정이다. 그의 해프닝은 처음부터 비디오아트로의 발전 가능성을 안고 있었고, 그의 비디오아트는 해프닝을 포함하는 미디어 공연예술로 발전하였다. 1956년 독일에 도착한 후 아방가르드 예술에 경도된 백남준은 1959년에 이미 자신의 해프닝 작품에 산 수탉, 오토바이와 함께 'TV 수상기 1대'를 포함시킬 구상을 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4년 후 1963년에 그는 <음악의 전시회-전자텔레비?gt;이라는 이름의 개인전에서 TV 수상기 13대를 예술로 변형시킨 '장치된 TV'(pre- pared-TV), 즉 미술사상 최초의 비디오아트를 발표함으로써, 그 자신 비디오아트의 창시자로 등장한 것이다. 이후 백남준의 예술 활동은 해프닝과 비디오아트 두 영역을 왕래하며, 때로는 해프닝의 문맥 속에 비디오를 사용하고, 때로는 비디오아트에 해프닝을 접목시킴으로써, 비디오 공연, 우주 중계 방송 공연 같은 새로운 미디어 공연 예술을 수립하기에 이른다. 다시말해 해프닝에서 출발한 백남준의 비디오아트는 공연적 요소를 포함하여 극도의 기계 미학에 인간적 내용을 더하고, 해프닝은 비디오 기술의 도입으로 위성 예술과 같은 새로운 국면의 공연 예술로 발전하여 온 것이다. 이렇게 순환적 발전 양상을 보이는 해프닝과 비디오아트는 백남준 예술의 수레를 끌고 나가는 두개의 바퀴가 되어 새로운 예술 창조를 위해 전진하는 것이다.
그러면 해프닝과 비디오아트는 무엇이며, 이 두 예술은 어떠한 미학적 개념들로 연결되는가?
 
즉, 무엇을 축으로 하여 전위적 공연예술 해프닝과 첨단 기술의 전자 예술 비디오아트가 공전 (公轉)하는가? 60년대의 가장 극단적인 실험공연 해프닝의 주역으로서, 또한 70년대에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 비디오아트의 창시자로서, 백남준은 그의 예술 활동을 통하여 무엇을 추구하는가?
백남준의 해프닝은 음악과 연극의 복합 형태인 '연극적 음악'이거나, 혹은 음악적 행위와 비음악적 행위의 혼합 양상인 '행위 음악'으로 볼 수 있다. 듣는 음악에서 '보고 듣는' 음악으로의 전환을 가져온 백남준의 행위 음악은 '볼거리' 재미와 '놀랄거리' 충격을 함께 제공하는 일종의 음악적 해학이요, 익살극이다.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부수고, 피아노를 연주하다 말고 관람하고 있던 존 케이지의 넥타이를 가위로 자르고, 반나체 공연파트너의 과도한 노출로 공연 도중 경찰에 연행되는 등 수많은 신화를 남긴 백남준의 해프닝은 그러나 행위의 센세이셔날리즘으로만은 볼 수 없는 깊은 철학적 의미를 지닌다. 백남준 해프닝의 테러리즘과 에로티시즘은 그 충격과 자극으로 관객을 환기시키고 관객에게 보다 쉽게 접근한다. 그의 공연은 관객을 위한 관객을 향한 소통의 예술이며, 관객을 작품에 참여시키려는 관객 참여의 예술이다. 객석의 케이지에게 가해진 공격은 관객을 자극하기 위한 백남준 특유의 충격 요법인 동시에, 관객을 작품에 참여시키는 가장 적극적이고 현실적인 방안이었다.
소통과 참여의 예술 해프닝은 첨단의 공연 예술이면서, 관객과 혼연 일체를 이루는 가장 원초적인 제의적 예술과 일맥 상통한다. 해프닝과 굿의 만남이 바로 그것이다. 해프닝이나 굿이나 모두 구경거리다. 그리고 그냥 구경만 하는 것이 아니다. 해프닝에서 관객 참여가 하나의 미학적 장치이듯이, 굿판에는 아무나 끼여들어 춤도 추고 빌기도 한다. 또한 현장성을 강조하는 삶의 예술 해프닝이나, 고인을 위한, 고인과 만나는 영매(靈媒) 예술, 굿이나 모두 자기정화라는 치유적 기능을 갖는다.
그리고 아방가르드 공연 예술가는 정신적 비전을 제시하고, 무당은 영적 비전을 제시하는 모두가 혜안의 용기있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볼 때, 해프닝은 샤머니즘의 현대적 표현으로서, 해프닝의 수행자는 특히 어려서부터 집안에서 벌어지는 굿판을 보고 자란 백남준은 첨단의 아방가르드인 동시에 전통 무당이 되는 것이다.
음악을 시각화하여 행위 음악을 만든 백남준이 전자 음악을 전자 비전으로 확장하여 비디오아트를 만들었다함은 그리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대중 매체 TV를 창조 매체로 활용했다는 점에서 백남준의 예술적 상상력을 평가하고 비디오아트의 의의를 찾을 수 있다. TV는 대중 매체임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대중과의 소통에서 불균형한 관계를 이루어 왔으며, 송신상의 일방성으로 현대인의 사고를 규정하는 위압적 존재로 군림하였다. 비디오아트는 TV 송신의 일방성을 극복하고 상호 매체가 되려는 또한 TV 내용과 대중의 취미 수준을 높이는 예술 매체가 되려는, 일종의 '대용 TV'로 등장한 것이다. 백남준의 대용 TV를 위한 작업은 관객의 적극적 참여를 조장하는 '참여 TV'의 수행으로 일관되어 왔다. 그리고 백남준 예술의 핵심 개념인 소통과 참여의 문제는 해프닝으로부터 유래된 문제이기 때문에 백남준의 비디오아트는 결국 참여 공연인 해프닝의 연장선상에 놓이는 '참여 TV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백남준의 비디오아트는 그 표현과 양식에서 어떠한 변화를 보인다해도 항상 관객과의 소통 문제, 관객 참여의 문제로 귀결된다. 1963년의 13대 '장치된 TV'로 시작하여, 1980년대의 '위성 중계'작업에 이르기까지, 그의 비디오 작업은 '새로움'의 창조와 그것의 참여적 효과에 집중되어 있다.
브라운관을 조작하여 방영 중의 유명인사 얼굴을 일그러지게 만들거나, 주사선으로 화면에 추상적 선묘를 그리거나 하는 '장치된 TV'의 새로움은 지각적 충격으로 관객을 일깨운다.
관객의 목소리의 파장이나 손놀림이 화면의 영상을 변형시키게 고안된 작품 <참여 TV>(1965)는 관객의 직접 참여로 작품이 완결되는 문자 그대로의 '참여 TV'였다. 시간과 공간의 관계를 도치시키는 수상기 설치 작업 역시 관객의 지각적 변화를 요구한다. 과속으로 분열되고 중복되는 백남준 비디오테이프 특유의 단음식 스타카토 영상은 가장 직접적이고 접촉적인 방법으로 관객의 뇌세포를 자극한다. 위성중계를 통한 우주작업은 매체와 수신자간의 수직적 소통에 지구의 양끝을 연결하는 수평적 소통을 이루어 전지구적 차원의 참여 TV를 실현하였다.
관객 참여라는 개념으로 상호 연결되는 해프닝과 비디오아트는 시청각 예술이라는 점에서 미학적 공통성을 갖는다. 해프닝은 백남준의 경우에는 시각화된 음악이고, 미국의 알란 카프로(Allan Kaprow) 경우에는 청각화된 미술이다. 비디오는 자명한 시청각 매체이지만, 백남준 비디오아트는 전자 음악의 시각화 작업에서 출발하였다. 그의 비디오 작업의 첫 전시회 이름이 <음악의 전시회>였다는 사실이 이 점을 잘 반영한다. 이렇게 시청각화된 해프닝이나 비디오예술은 기존의 시청각 예술인 전통 공연과는 다르다. 오페라에서는 음악적 요소가, 연극에서는 언어적 요소가 중시되듯이, 전통 공연은 청각 위주의 시청각 공연 예술이다. 반면에, 해프닝은 시각과 청각이 동등하게 작용하는 엄밀한 의미의 시청각 '공연 미술'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페라는 라디오 중계나 음반을 통한 공연의 청각화가 가능하지만, 해프닝의 청각화는 생각할 수도 없는 것이다. 시청각 예술인 해프닝의 중계나 재생은 시청각 전자 매체인 비디오로만 가능하다. 해프닝 공연을 위성으로 중계하는 백남준의 우주공연은 시청각 예술의 절정이다.
그러면 시청각 예술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시각은 평면이나 공간, 즉 장소성에 관계되고, 청각은 시간성과 관계되기 때문에 시청각 예술에서는 시간과 장소의 만남인 '현장성'과 '동시성'이 중요한 문제가 된다. 해프닝은 시간 예술인 음악, 혹은 연극을 시각화하였다.
시간을 시각화한 해프닝 경우는 '지금 여기'라는 현장성이 중요하게 부각되고, 이로부터 삶의 예술로서의 해프닝 현장 미학이 도출된다. 비디오아트 경우는 시청각 매체인 비디오가 동시성, 통시성과 같은 복합적인 시간성을 내포하기 때문에 시간의 문제가 자연히 중요한 미학적 개념으로 등장하게 된다. 비디오아트의 시간은 두 방향에서 생각할 수 있다. 우선, 2차원적 영상에 시간적 차원이 부과되어 3차원적 전자 도상(圖像)을 만든다는 비디오 이미지 자체에 관계되는 시간성 문제를 생각할 수 있다. 전자이미지의 3차원적 성질은 바꾸어 말하자면, 전자적 광채가 이미지에 양감을 부여하기 때문에 획득된다. 순간적 빛을 사용하는 촬영 이미지와 다르게 전자 이미지는 빛의 유통, 즉 시간을 경과하는 전자의 흐름으로 인하여 그 외곽선을 끊임없이 수정함으로써 일종의 입체적 성질을 부여받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비디오 이미지는 스크린 위에서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함께 생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시각적 재현 이미지와는 다르게 과거 시제와 기억에 의존하는 '지각적 이미지'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 시간이 야기하는 중요한 점은, 시간의 개입으로 전자적 양감을 지니게 되는 새로운 유형의 지각적 전자 이미지가 기존의 평면적, 정적 이미지와는 다른 지각 반응을 불러 일으켜서 지각 주체의 인식 체계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태학적 의미에서 마샬 맥루한(Marshall Mcluhan)은 전자매체를 "신체의 연장"으로 보았고, 쟈크 데리다(Jacques Derrida)는 비디오와 같이 촉각을 활성화하여 감각 체계를 재조직하는 시청각 매체의 공로를 인정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맥에서 비디오아트는 본성적으로 생태학적 차원의 관객참여를 조장하는 소통의 예술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비디오아트의 또 하나의 시간은 비디오의 메카니즘에 관계되는 것으로 매체를 조작하여 시간을 '조절'하고 시간과 '놀'수 있다. 카메라가 피사체를 촬영해 화면에 동시 중계하는 폐쇄회로 설치는 시간을 영속화한다.
 
기계적 조작으로 즉각 반영 대신에 시차 반영을 만들면 시간이 영원히 연기(延期)된다. 비디오테이프 방영 메카니즘은 전혀 다른 시간을 제시한다. "비디오에 한번 찍히면 죽을 수가 없다"고 백남준이 말하듯이, 비디오에 찍힌 이미지는 영원한 현재속에 존재한다. 또한 테이프를 뒤로 돌리고 앞으로 돌리면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시제를 동시에 넘나든다.
지각 주체로서의 관객은 비디오가 제시하는 통시성과 동시성을 인식하면서, 시간에 대한 새로운 인식, 즉 순간과 영원은 동일하다는 동양적 신비 사상을 접하게 되는 것이다.
1981년 10월 12일, 백남준은 음악과 무용의 센터인 뉴욕의 키친(The Kitchen Center)에서 무용가 데니즈 고던(Denise Cordon)과 함께 <인생의 야망 이루어지다>(Life's Ambition Realized)를 공연하였다. 고던은 춤을 추고, 백남준은 축음기판을 깨며 바이올린을 부수는 행위음악을 보였다. 고던의 스트립과 백남준의 음악적 행위가 하나의 해프닝을 만들고, 그것이 즉석에서 촬영되어, 생공연을 이은 재생 공연이 방영되었다. 그런데 공연을 녹화한 비디오테이프는 공연 장면을 뒤로부터 보여주는 것이다. 옷을 하나씩 벗던 고던이 이제 옷을 하나씩 입는다. 시간의 매체 비디오와 시간 예술인 공연의 만남을 시간의 역행 속에서 이루어지게 한 것이다. 백남준은 시간을 조작하여 과거 시제와 기억 체계를 혼란시키고, 그럼으로써 또 하나의 새로운 지각 경험을 유도하였다. '영상의 마술사' 백남준은 또한 '시간의 마술사'로서 훗날 시간 예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국제적으로 팔아먹을 수 있는 예술은 음악, 무용, 무당 등 시간예술뿐이다. 이것을 캐는 것이 인류에 공헌하는 것이다. 우리 민족은 오랫동안 유목민이었으며, 유목민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을 주어도 가지고 다닐 수가 없다. 무게가 없는 예술만이 전승되고 발전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