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빈 올라프, 유혈낭자한 왕족 연대기 기록자

 * <Public Art> 6월호에 기고한 네덜란드 태생(59년)
사진가, 에르빈 올라프(Erwin Olaf) 작가론.

                                                                                    반이정 미술평론가
 2005년 오스트레일리아 사진센터ACP(Australian Centre for Photography)가 여름에 선보인 에르빈 올라프Erwin Olaf 사진전 <고상함과 사악함 Elegance and Perversity>은 오스트레일리아 화단과 미디어를 열기와 논쟁의 도가니로 몰아갔다. 그해 여름 체감온도는 살짝 상승했을 지도 모르겠다. 역사적인 노예폐지론자의 성함을 딴 오스트레일리아의 독립 미디어 ‘헨리 손튼Henry Thornton’은 전시회가 관람자로 하여금 마음 속에 도사린 관음증을 직면케 한 점에 주목했고, <왕족 Royal Blood>연작이 드러낸 선혈 낭자한 푸주한의 살점 튀는 잔학성을 실감나게 구현시킨 포토샵의 기술력에 탄성을 보탠 리뷰를 내보냈다. 그러나 같은 시기 맞은 편에는 그 지역 왕정 복고자들의 격분이 팽팽히 대치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불의의 사고로 타계한 다이애나 비를 관능적으로 묘사한 점, 그도 부족해 그녀의 왼 팔뚝 살갗을 가르고 반쯤 파고들어 살점과 피 범벅이 된 메르세데스 벤츠 엠블럼이 도발적인 <DI +1997>(2000) 앞에서 끝내 머리의 뚜껑이 열리고 말았다. ‘오스트레일리아 왕정복고주의자 연맹’의 한 간부는 그들이 분개한 이유는 예술적 몰취향 때문이며 출품작 태반이 외설적이라며 불평했다.

 

 충격 요법으로 선정성 논란을 몰고 다니는 에르빈 올라프는 그러나 다가 올 몇 해 치 개인전 일정까지 사전 예약해야 할 만큼 귀하신 몸이다. 그를 유치하려는 경쟁은 비단 유수의 미술관 기획자들에 그치지 않는다. 굴지 기업체들이 의뢰인으로 ‘광고 사진가’ 에르빈 올라프에게 수요를 느낀다. 엄선된 시각 코드로 관객을 소비자로 변환 시키는 묘력, 그것이 올라프 사진이며 그 비법이야말로 당대적으로 유효하단 걸 장사꾼의 직감은 놓치지 않았다. 예술계의 불경스런 연금술사들이 패션이나 광고와 같은 ‘장외’ 대중문화를 자신의 창의력에 동기부여 수단으로 애용한 건 햇수로 50년도 족히 거슬러 올라 갈 것이다. 그러나 엄격히 상업 사진으로 범주화 된 분야에서 입지를 굳힌 뒤, 제도 예술계에 성공적으로 진입한 사례는 90년대 초 패션업체 베네통 광고로 유명세를 탄 올리비에로 토스카니Oliviero Toscani의 논쟁적 사진들이 떠오른다. AIDS로 병상에서 임종을 맞는 환자(사진가 테레스 프레어Therese Frare의 흑백 원본 사진 위로 채색을 올려 컬러 광고에 둔갑시켰다), 종교 분쟁의 참상, 마피아 희생자의 보도 사진 등 제품 홍보와 직간접적으로 연관성을 찾을 길이 없는 보도 사진을 광고로 내놨다. 광고의 본질을 되묻게 만든 토스카니의 작품은 보는 이를 소비자의 물신숭배와 관람객의 영적 구원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게 만들었지만, 전무후무한 유희를 체험한 관객(또는 소비자)은 자신의 감동을 베네통의 매출 신장으로 되돌려줬다.

 

광고 사진 고유의 작위적 연출력과 초현실적 상황 설정처럼 올라프의 미적 장치들은 사진가 데이비드 라샤펠(David Lachapelle)에게서도 발견된다. 광고 사진과 예술 사진을 오가며 양쪽의 장점을 보완한 내공의 달인들이 주목받는다. 광고와 예술은 용도 면에선 선명히 구분되는 듯 싶지만, 상호 의존적이며 때론 외관만으로 분류하기가 쉽질 않다. 대중 문화의 지배력이 팽창한 현대 사회에서 관객의 미적 취향은 결국 소비자의 입맛과 연장선상에서 고려될 수 밖에 없다. 제도 예술은 이 서늘한 진실을 외면할 수 없었다. 광고 사진의 입지전적 인물이 제도 화단으로 유입되는 추세는 이 때문일 것이다. 에르빈 올라프의 이력을 살피면 첫 수상 기록이 1988년 유럽 청년사진가Young European Photographer이다. 총 32장의 흑백 사진을 수록된 출판물로 간행된 이 연작 제목은 <체스 말들 Chessmen>이다. 하지만 그로부터 정확히 10년 후, 1998년 그는 상업 사진가로 칸느 광고 페스티벌에서 ‘은사자 Silver Lion’상을 수상한다. 수상작은 청바지 브랜드로 유명한 이탈리아계 디자인회사 ‘디젤 Diesel’의 의뢰로 제작한 일련의 광고 사진. 수상 연작은 누아르 풍 배경 속으로 감금 공포와 SM의 소품, 결박 등 불경과 외설로 충만한 실내에 등장인물에게 디젤 청바지를 착용시킨 게 전부다. 때론 지하 작업실(마치 고문실 같은)에서 마네킹의 사지를 톱으로 자르는 근육질 청년의 뒷모습도 보인다. 누가 봐도 유기 직전 시신을 토막 내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수상작을 통해 에르빈 올라프가 광고 미학으로부터 수혈 받을 불온한 상상력의 맹아를 확인 할 수 있다. 이후 노키아(2001/2005), 마이크로소프트(2002)등 유수의 기업체들이 자사 홍보를 위해 이 퇴폐와 불경의 악당을 고용했다. 2008년엔 뉴욕 타임즈도 게이 커플 이미지를 그에게 의뢰한다(에르빈 올라프도 게이다). 광고업계에서 연마시킨 노하우로 상업예술과 순수예술 사이의 고전적 경계는 물론이고, 작품에 대한 동조와 배척 사이의 경계까지 아슬아슬 넘나드는 도발을 멈추지 않은 그는 사진계의 문제아로 부상한다. <유행 추종자 Fashion Victims>(2000)는 ARMANI, DKNY, GUCCI, 등 명품로고가 박힌 종이 쇼핑백을 머리에 뒤집어 써 얼굴을 가린(익명화 시킨) 다부진 몸매의 누드 남녀들이 등장한다. 명품 로고, 벌거벗은 나체의 섹스 어필이 이 예술 사진을 상업 사진과 혼동하게 만든다. 소비주의의 행태를 논하려 했다는 작가 의도에도 불구하고 의뢰받은 선정적 광고 사진 사진 같은 인상을 지우지 못한다. 그러나 <Royal Blood>만큼 세간에서 유명세를 떨친 작업을 그의 작품 목록에서 찾긴 어려울 것이다. 연작 제목 속 Blood는 물론 혈통을 뜻하는 거지만, 순백의 배경과 의상의 통일성에 한 줄기 그로테스크한 유혈 낭자가 더해지면서 Blood는 혈통보다는 붉은 피 자체에 비중을 쏟는 것 같다. 피는 이 작품의 감상 포인트다.

 

<Royal Blood>의 구성은 이렇다. 역사상 실존 왕족들 중 불우한 최후(저격 또는 사고로 사망한)를 맞은 인물을 골라 백색 배경과 의상을 착용시켜 초상사진으로 재구성했다. 작품마다 사망 연도를 제목 속에 포함시켰는데 역사적 고증의 무게를 더할 목적일 것이다. 사진이 담은 순간은 이들의 사인(死因)과 연관 있다. 줄리어스 시저(BC 44년경 사망)는 허리춤에 은색 단검이 박혔다. 시씨Sissi라는 애칭으로 불린 오스트리아 황후 엘리자베스(1898년 사망)는 가슴팍에 저격범이 휘두른 손톱 다듬는 줄이 꽂혔다. 다이애나 비(1997년 사망)의 팔뚝에는 이미 얘기했지만 벤츠의 엠블럼이 박혀있는데 그녀가 벤츠로 이동 중 교통 사고사한 점을 부각시키려는 방편 같다. 연작 중 유일하게 사망자가 아닌 목격자 자격으로 등장한 재키의 경우,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두 장이 한 쌍이다. <Jacky O. 12:29 pm>와 <Jacky O. 12:30 pm>이 그것인데, 이 두 장의 차이점은 제목에 기재되어 있듯 단 1분을 사이에 두고, 뒤의 사진 속 영부인 재키로 분한 모델은 저격당한 케네디 대통령의 머리에서 쏟아져 나온 핏덩이와 뇌 파편을 뒤집어썼다. 포토샵이 동원된 티가 난다. 역사 재현의 틀을 취하지만 작품과 실록 사이에도 차이가 보인다. 그 점이 <Royal Blood>의 매력이다. 인물들의 사망 당시 나이와 상이한 연령대의 모델을 섭외했다. 시씨는 60세에 저격됐지만 배역 속 시씨는 10대로 보인다. 56세에 브루투스의 비수에 사망한 줄리어스 시저도 사진에선 10대 소년이 열연한다. 이들은 모두 피를 뒤집어 쓴 채 아무 일 없었던 듯 관객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치명상에 개의치 않는 표정이다.

 

 저격 된 때, 아니 사망 직후 이들은 나이를 거꾸로 먹어 유년기로 되돌아가 멈췄다. 그리고 원망스런 운명을 한탄하며 우리를 직시한다. 이런 추정과 망상은 민담과 전승을 통해 우리에게 익숙한 것들이다. <Royal Blood>는 피격, 유명인사, 유혈낭자, 역사 재구성에 대한 호기심을 그로테스크하고 에로틱한 기술을 써서 담담하게 그려냈다. 왕정 복고주의자들은 <Royal Blood>에서 불경의 난도질을 목격했다지만, 연작의 제목(왕족의 혈통)이 말해주듯 에르빈 올라프는 보수적 가치에 대한 향수의 힘을 아는 사진가다. 2007년 내놓은 <비탄 Grief>(2007)은 <비 Rain>(2004), <소망 Hope>(2005)과 더불어 60년대식 복고풍을 담았는데, 상류 사회의 절제된 절망은 주제 면에서 <Royal Blood>와 공유한다. 온통 베이지색과 잔잔한 목재 질감, 금욕적 구도와 비애를 자제하는 귀티 나는 등장인물을 통해 <Grief>의 진정한 지향점을 추측하기란 분명치 않다. 빌 비올라의 멜랑코리한 슬로우 모션을 스틸로 가둔 것 같기도, 60년대 상류사회에 군중의 호기심을 노먼 록웰 풍(Rockwellesque)으로 문맥없이 던져놓은 것 같기도 하다. 과거사의 재구성, SM, 에로티즘, 인체 기형, 절제된 구성, 이 모두를 한데 묶는 광고 사진술과 그 결과, 파생되는 센세이션. 에르빈 올라프가 선전하는 요인이다. 복잡 다단한 문맥을 더는 요구하지 않는 세간의 감각주의 취향 역시 그의 선전을 지원하는 또 다른 요인일 것이다. 올라프의 대표작 상당수는 공식 홈페이지 www.erwinolaf.com에서 접할 수 있다.

 
출처  http://blog.naver.com/dogstylist?Redirect=Log&logNo=40051835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