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읽히지 않는 이유 몇 가지


                                                                              임동숙 rosaids@hanmail.net 사진가


여러분은 얼마나 자주 전시장을 방문하십니까?
혹시 전시된 작품 앞에서 도통 작품의 의미를 알 수 없어 막막함을 느껴본 적은 없으신지요.
유명 작가의 전시일수록 전시장은 항상 사람들로 북적거리기 마련입니다. 그런 전시장에 가면 으레 만나게 되는 풍경 중 하나가 작품을 보는 듯 마는 듯 스쳐 지나가는 일부 관람객들의 모습 이지요. 이들의 관람 태도를 탓하자는 것이 아니라 왜 이런 모습이 자주 눈에 띄는지를 생각해 보자는 겁니다.
작품이 흥미롭다고 느낀다면 관객들은 당연히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겠지요. 그렇다면? 유명한 작가의 전시라 해서 기대를 하고 오긴 왔는데 막상 작품을 보니 흥미를 끌만한 별다른 요소를 찾을 수 없었던 것이 이유었을 겁니다. 한마디로 작품이 어렵다는 거지요. 사람들이 작품을 어렵게, 혹은 재미없다고 느끼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러 가

지가 있겠지만 그중 작품을 이해하는데 걸림돌이 되는 몇 가지 요인들을 살펴보기로 합시다.첫째, 작품을 통해 작가가 이야기하는 방식과 감상자가 작품을 해석하는 코드가 일치하지 않아서 발생하는 문제입니다.
70년대 이후, 예술은 전통적으로 예술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믿었던 아름다움 자체를 추구 하는 유미주의적 관점으로부터 삶의 가치라든가 작가의 의식 자체를 표현하는 쪽으로 관심의 방향 을 틀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방향 전환 과정에서 등장한 새로운 예술 장르가 개념예술입니다.
개념예술이란 완성된 작품 자체보다 아이디어나 과정 전체를 예술로 인정하는 것인데 사진은 그 매체적 특성상 개념미술의 주요 표현 매체로 널리 활용되기 시작했지요. 그러면서 사진은 자연스럽게 기존의 기록성이나 아름다움만을 추구하던 예술적 시각에서 탈피하여 급속하게 그 표현 영역을 확대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국내외에서 활발한 작품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사진가 김아타의 이야기를 통해 현대 사진의 방향을 엿보기로 하지요.
“... 현대 미술사에서 개념은 그 시작과 끝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동양적인 관조와 몰입, 해체의 과정을 통하여 개념을 확인해 가야하며, 결국은 개념 잡기를 통한 새로움이 어느 정도인가에 따라 작업의 수준이 달라진다고 생각한다(포토넷 2002년 9월호).”
이 말이 시사하듯 현대 예술은 아름다움 자체를 즐기는 미적 유희를 중요하게 여기기보다는 개념, 즉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이를 구현해나가는 과정 자체를 예술의 중요한 역할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예술계에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순수한 아마추어 감상자들은 아직 어떤 작품이든지 유미주의적 관점으로 해석하려 드는 경향이 있지요. 일반인들에게 현대 미술이 어려운 이유는 작품과 감상자의 코드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음은 문화센터에서 사진을 공부하는 P여사의 이야기입니다.
“얼마전에 PKM 갤러리에서 열렸던 <환각의 공간전>에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솔직하게 말하면 그 사진들이 왜 유명한지 잘 모르겠어요. 그 전시장을 나와서 인사동의 사진 화랑에서 전시 중인 저희 동료들 사진을 보았는데 오히려 휠씬 더 좋았습니다.”
P의 이야기는 세계적인 사진가들의 사진이 읽히지 않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말인데,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들의 작업이 그토록 낮설게 느껴졌었던 걸까요?
사진평론가 진동선의 <환각의 공간전>에대한 평을 들어보기로 합시다.
“PKM 갤러리에서 개최된 전시가 역사적 의의를 갖는 것은 무엇보다도 사진의 역사에서 사진가들이 수행해 왔던 인덱스(index)적 요소, 즉 탈(脫)예술적 관점, 탈 예술지상주의로서의 사진의 객관적 지표성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 중략 ... 여기서 사진의 객관적 인덱스란 작가의 주관적 감정이입 없이 대상을 가치 중립적으로 최소한의 왜곡과 중립적 외관으로 대상을 표상하는 사진적 방법론을 말한다.”


이 평의 내용대로라면 <환각의 공간전>에 전시된 사진들은 감정에 호소하는 방식으로 읽혀지는 것을 가능한 배제한 사진들인데, 오히려 P는 사진 속에서 유미적 감동을 자극하는 요인들을 찾기위해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위에서 지적한 작품과 감상자의 사용 코드의 차이가 만들어 낸 낯설음인 거지요.

그럼 <환각의 공간전>에 참여했던 작가 중 한 사람인 로버트 아담스(Robert Adams)의 사진을 봅시다. 저는 이 작업들을 80년 대 중반에 처음 접한 이후 그의 팬이 되었는데, 당시에는 작가가 의도했던 바와는 상관없이(로버트 아담스의 작품이 작가의 주관성을 배제하고 대상을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시각으로 바라보 았다는 사실 때문에 사진사에서 중요한 작가로 인정받게 되었다는 사실은 한참 후에야 알게 되었다) 순전히 작품이 내포하고 있는 쓸쓸한 이미지가 저의 감성 코드와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그의 사진이 어떻게 다가옵니까? P나 제가 부딪친 문제는 작품을 통해서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와 감상자의 해석이 일치하지 않는 것인데,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진사 안에서 작가의 의도를 읽어낼 수 있는 최소한의 공부가 필요합니다. 흔히 하는 말처럼 “아는 만큼 보인다”는 거지요.

둘째, 전통적인 예술관에서 중요하게 여겼던 조형언어의 틀이 오히려 작품을 제대로 읽지 못하게 하는 방해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얼마전 사진을 공부하기 시작한 J는 책장에 꽂힌 사진 책들을 펼쳐보던 중 게리 위노그랜드(Garry Winogrand)의 사진들을 보면서 한마디하더군요.
“이렇게 찍으면 구도가 잘못된 사진 아닌가요? 이런 사진으로 책까지 내다니,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군요.”
J가 위노그랜드의 사진을 판단한 기준은 ‘좋은 구도란 이러이러한 것이다’는 전형적인 조형언어의 틀에 갇힌 결과입니다. 처음 사진을 시작할 때 가이드 역할을 해주는 틀에 갇혀 정작 작품을 통해 작가가 표현하고 싶은 내용을 읽어내지 못한 거지요.
노출이나 빛, 초점이 맞은 정도 등 사진 기호를 작품성의 판단 기준으로 삼는 사람들을 종종 만날 수 있는데 이는 ‘형태는 내용을 담는 그릇’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해서 저지르게 되는 실수 가운데 하나입니다. 형식의 틀을 깨고 볼 수 있는 유연한 사고가 작품과의 진정한 만남을 이루게 합니다.
셋째, 자신의 정서와 맞지 않는 작품에 대해 무조건 거부 반응을 가지는 것도 작품을 이해하는데 방해 요인이 되곤 합니다.
지난 해 일민 미술관에서 있었던 일본 작가 아라키 노부요시의 작품전을 보셨는지요?
워낙 매스컴을 많이 타서인지 평소 사진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던 사람들도 이 전시를 보러갔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더군요. 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기분이 안 좋았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왜, 무엇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를 되짚어 보았더니 대부분 ‘그냥요’하는 식으로 막연한 대답을 하더군요. 물론 사진은 시각예술이고 이미지를 매개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언어로 느낌을 전달하려는 시도 자체가 무리한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작품을 통해서 작가가 하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읽어 내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자신의 정서에 맞느냐 그렇지 않느냐를 판단 기준으로 삼는 것은 올바른 감상자의 태도라고 볼 수는 없지요. 설사 말로는 구체적인 느낌을 표현할 수 없다해도 작가가 하는 이야기의 실체(주제)를 읽어낼 수는 있어야 합니다. 그 후 좋다 혹은 나쁘다는 판단을 해야 작품을 올바로 이해했다고 할 수 있지요. 알고서 싫어하는 것과 모르는 상태에서의 막연한 감정 거부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그 밖에 시각언어의 특성을 미처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문제도 있지요.
사진 동호인 모임에서 주최하는 그룹 전시회에 가면 “이곳은 왜 이렇게 찍었으며, 제목이 이렇게 붙여진 이유는...” 하고 사진 앞에 서서 열심히 설명하는 촬영자의 모습을 흔히 보게 됩니다. 감상하는 사람도 촬영자의 설명을 다 듣고 난 후에야 비로소 작품을 이해했다는 표정을 짓곤 하지요. 이는 시각언어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는데서 빚어진 오해로 사진 이미지를 정보의 집합으로 여기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사진을 일반 언어처럼 설명에 의해서 이해하려고 하면 이미지의 숨은 뜻을 읽어낼 수가 없습니다. 찍을 때도 작품을 감상할 때도 시각언어는 설명으로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자신에게 익숙한 하나의 코드로 모든 작품을 이해하려 들지는 않으시나요.
위 사진들을 보면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보시기 바랍니다.

요즈음 들어 저는 삶이란 관계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 뿐 아니라 사람과 다른 생명, 식물이나 동물, 심지어 하늘과 돌멩이처럼 무생물이라 일컬어지는 것들 하나하나에게까지도 마음을 쏟을 때 맺어지는 인연의 어우러짐에 의해 삶이 형성되는 것이라는 생각이지요.
작품을 감상하는 것 또한 새로운 관계맺음이 아닐까요? 관계는 생명과 같아서 그냥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의사소통을 매개로 점점 자라가는 것 같습니다. 작가가 작품을 통해서 말하는 이야기 방식을 이해하는 것이 작품과 올바른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기본 조건이겠지요. 작품과 해석의 코드를 일치시키기 위한 노력, 그것이 우리가 공부해야만 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많은 작품들을 만나는 것은 그만큼 삶의 지평을 넓히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