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개인전서 호평…신인화가 전 인 경 씨


최근 서울 인사동에서 신인 화가로 주목받고 있는 사람이 있다. 그 주인공은 바로 담아(譚峨) 전인경(40) 씨.


원래 첫 개인전을 열면 성공하기가 쉽지 않지만, 전씨는 지난달 첫 개인전에서 미술작품을 판매(?)까지 하는 성과를 거두며 호평을 받았다.


“어렸을 때부터 가져왔던 그림에 대한 욕구가 폭발했다고나 할까요? 운 좋게도 첫 개인전이 예상보다 정말 성공적이었습니다. 앞으로 평생을 그림과 함께 그림처럼 살고 싶습니다.”


전씨는 원래 디자인을 전공했다. 대학 입학 당시 디자인이 유행하면서 단지 ‘멋있어 보인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전공을 택했던 것.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항상 꿈은 화가였고, 그 이후에도 화가에 대한 꿈과 집착은 계속 이어졌다. 결국 대학수능시험이 처음 치러진 1994년, 수능을 보고 대학에 다시 들어갔다. 물론 전공은 서양화였다.



#그림

단지 멋있어 보여 시작한 디자인 공부


늦깎이 수능 치르고 서양화에 빠지다


“처음 디자인을 전공할 때는 배우면서도 큰 흥미가 없었어요. 나중에야 내가 진짜 하고 싶어하는 것은 서양화라는 것을 알고 어렵게 대학입시에 다시 도전했죠. 첫 수능이었지만 비교적 수월하게 다시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전씨는 대학에 들어가 다시 공부하면서 하고 싶은 것을 해서 그런지 힘든 줄도 모르고 배웠다고 한다. 당시 나이 스물일곱 살이었다.


그러나 대학 입학 후 결혼하면서 대학원 진학의 꿈을 이룰 수 없었다. 대학 졸업 후 남편과 함께 미국으로 떠났기 때문. 미국에서도 대학원 진학의 꿈을 버리지 못했지만 경제적인 어려움 등을 겪으면서 대학원 진학에 도전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제 의지가 강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림을 좋아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태어나서 단 한번도 변하지 않았고, 계속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는데 강하게 제 주장을 펴지 못한 것이죠. 하지만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항상 그림을 손에서 놓지는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림을 놓지 않았던 것이 지금 제 꿈을 이룰 수 있는 데 큰 바탕(?)이 된 것 같습니다.”


결혼 이후 그녀에게는 1998년부터 3년간의 미국 생활과 이혼, 경제적인 문제 등등 인생을 살면서 겪을 수 있는 온갖 고통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온 그녀는 본격적으로 그림에 몰두하게 된다.


“뭐라고 말하기 힘들 정도로 다른 사람들이 겪는 갖가지 고통을 다 겪었다고나 할까요? 그럴수록 그림에 대한 애착은 더 강해졌던 것 같습니다.”

#시련

결혼ㆍ졸업ㆍ미국생활 3년…그리고 이혼


경제적 문제까지… 고통 한꺼번에 몰려오다


그녀의 그림에는 동양적이고 불교적인 색채와 불화가 접목돼 있다. 우연히 접한 불교와 불화가 그녀의 그림 인생에 또 다른 활력을 불어넣는 계기가 된 것. 전씨는 원래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난 기독교 신자다.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동양적이고 한국적인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가끔 신문 기사나 잡지에 불교 관련 내용이 나온 것을 보면 마음에 와 닿는 글귀가 많아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서 불교와 연관된 것은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던 중 한 친구에게, 불교를 접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고민하다가 우연히 만봉(萬奉?속명 이치호) 스님에게 그림을 배우게 됐다. 친구의 소개로 만봉 스님의 아들인 이인섭 씨를 소개받은 것. 이씨는 달마도를 그리는 사람으로 유명하다.


2006년 5월 열반한 만봉 스님은 우리나라 불교 미술의 거장으로 통한다. 만봉 스님은 국가 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48호 단청장 예능 보유자로, 여섯 살 때부터 불화 위주로 그림을 그리는 등 생전에 왕성한 작품활동을 벌였다. 그의 작품은 금강산 표훈사, 유점사, 장안사, 도선사, 백련사, 남대문, 경복궁, 남한산성 등 전국의 주요 사찰과 문화재에 고루 남아 있다. 전씨는 서울 신촌 봉원사의 만봉 스님에게서 2003년부터 약 3년간 불화를 배웠다. 그리고 만봉 스님 별세 후에는 ‘내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욕구가 절정에 달했다.


담아(譚峨)라는 호는 만봉 스님에게 그림을 배우면서 얻은 아호(雅號)이다. ‘클 담(譚)’, ‘봉우리 아(峨)’의 한자어로, ‘클 봉우리’란 뜻이다. 즉, 앞으로 크게 될 봉우리란 뜻의 미래지향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만봉 스님에게 그림을 함께 배우던 부산의 청안 스님이 지어준 이름이다. 청안 스님은 사주를 보고 전씨의 호를 지어줬다고 한다

#미래

만봉스님께 불화 배우며‘譚峨’아호 얻어


파리 전시회 계획…도전은 이제 시작이다


전씨는 “불화를 배우고 난 뒤부터는 제 그림이 보다 정교해졌습니다. 그리고 이젠 때가 됐다는 판단이 들었어요. 보통 전시회를 하려면 1년 전에 전시회장을 구해야 하거든요. 인사동의 전시회장을 1년 전에 미리 구했습니다.”


전씨는 처음에는 인사동 경인미술관에서 전시하려 했으나 후원을 받게 돼 공화랑으로 전시장을 바꿨다. 보통 첫 개인전은 별도의 후원을 받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성공을 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전씨는 운 좋게도 만봉 스님의 아들인 이인섭 씨를 통해 아라재콜렉션의 후원을 받게 됐다. 전씨의 작품 포트폴리오를 보고 아라재 측에서 단번에 후원하겠다고 제의해 성사됐다.


지난 10월 첫 개인전은 그녀의 호를 딴 ‘담아 이야기, 담아의 꿈’을 주제로 하고 있다. 총 38개의 작품이 전시됐다. 2001년부터 2008년까지의 작품이 두루 전시됐으며 만봉 스님에게서 불화를 배운 3년간에는 작품이 없다.


그녀의 첫 개인전에 대해 미술평론가 박명인 씨(한국미학연구소 대표)는 “시련의 시기와 극복의 시기를 회화 양식으로 적나라하게 표출했다”며 “‘담아 이야기’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피할 수 없이 고통을 수반하고 산다는 메시지이고, ‘담아의 꿈’은 고뇌의 시기를 극복한 인간의 참모습을 아름답게 투영시켜 인간의 가치를 반영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첫 개인전을 성공리에 마친 전씨는 이제 눈을 해외로 돌려 또 한 단계 도약을 꿈꾸고 있다. 서양화의 본산인 프랑스 파리에 가서 전시할 계획을 구상 중이다. 이를 위해 최근 예술의전당에서 재불 작가들과 교류를 갖기도 했다.


전씨는 “제 그림에 불교적이고 동양적인 색채가 강하잖아요. 그런 점에서 파리에서 독특한 콘셉트로 주목받을 것 같기도 하고, 우리 미술을 세계에 알린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는 것 같아 해외 진출을 생각하게 됐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녀, 담아의 꿈은 죽을 때까지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지난 일을 치유하면서 살고 싶어요. 내 그림을 통해서 다른 사람을 구제하지는 못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힘을 줄 수 있는 그런 그림을 그리면서 평생을 살고 싶습니다.”


담아, ‘클 봉우리’가 앞으로 얼마나 큰 봉우리를 활짝 피워낼지 국내외 미술계가 주목하고 있다.


장연주 기자(yeonjoo7@herald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