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로버트 프랭크(Robert Frank)의 '미국인(The Americans, 1958)'
[아래] 윌리엄 클라인(William Klein)의 '뉴욕(New York, 1956)'
 


"현대 순수사진의 뿌리는?" 이란 질문을 받는다면 서슴없이 로버트 프랭크(Robert Frank)의 '미국인(The Americans, 1958)과 윌리엄 클라인(William Klein)의 '뉴욕(New York, 1956)을 말하겠다.

이 두권의 사진집이 현대사진에 끼친 충격은 놀랄만하다. 1960년대의 '현대사진가(Contemporary Photographer's)라고 불리우는 일군의 작가들과는 달리 독자적으로 다른 길을 걸어 특이한 사진시각을 개척한 다이안 아버스(Diane Arbus)에 이르기까지 이 두 사람의 영향력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현대순수사진의 개념은 두 사람이 개척한 노선을 발전시킨 것이라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라이프(Life)' 와 '루크(Look)'지에서 그들은 그 이전에 많은 사진가들에 의해 형성된 포토 다큐멘터리와 전혀 다른 시각으로 사진집을 펴냈다. 골든 에이지(Golden Age)라 일컬어지는 보도사진의 전성기에서 사진은 세계의 사건을 전달한다는 강한 사명감과 휴머니즘에 입각한 공론적 사진이었는데 반해 그들은 사진을 자기자신에게 밀착시켜 일상의 단조로운 현실생활에 개인적인 시선을 맞추었다. 이 개인적인 시점으로 사진을 촬영하는데 당시의 저항이 어느 정도였는가에 대해서 프랭크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지금이라면 누가뭐라고 해도 촬영할 수 있다. 그렇지만 당시에는 라이프 스타일의 사진이 전성기였기 때문에 그밖의 방법으로 촬영하려면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다."

프랭크는 1924년 스위스의 쮜리히에서 태어나 1947년인 23세 때 미국으로 이주했다. 그가 유럽인이라는 한 가지 사실은 '미국인'의 독자적인 영상을 만들어낸 것과 무관하지 않다. 즉, 직선적이고 편견이 없는 지적인 시점은 선입관을 갖지 않고 객관적으로 바라봄으로써 성립하는 형식이다.

이 사진들은 1955년 미국의 구겐하임 재단의 장학금을 받고 1년간 미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촬영한 것이기 때문에 미국에서 처음 출판된 성질의 것이었다. 그러나 '미국인'은 1958년 프랑스에서 출판되었고 나중에 미국에서 간행되었다.

그만큼 프랭크의 '미국인'은 미국인에게 있어 기성의 이미지와는 동떨어진 것으로 순조롭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당시 50년대의 미국은 기술혁신에 의해서 중산계급이 급증한 번영의 시대였고 매스 미디어가 만드는 아메리칸 드림에 흠뻑 취해있던 시대였다. 따라서 아메리칸 드림이 한꺼풀 벗겨진, 애처롭고 추한 사진들이 비록 자신들의 진정한 현실의 모습이라 할지라도 자신들의 자화상으로 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인'에는 번영으로 들떠있는 소시민이 아닌, 남몰래 일상속에 파묻혀 있는 소시민의 현실생활이 완전하게 나타내고 있다. 틀림없이 그것은 스위스 태생의 젊은 사진가에 의해서 습격당한 미국의 정경이었다. 그러나 이 정경은 미국인이 몰랐던 현실이 아니고 무의식중에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현실이었던 것이다. 끝없이 계속 되는 사람도 차도 찾아볼 수 없는 고속도로장면, 자동차 사고 직후 시체시트를 덮고 순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 번쩍번쩍 빛나는 스텐레스벽으로 둘러쌓인 커피 스텐드 안의 플라스틱같은 여종업원, 샌프란시스코의 언덕에서 힘없는 모습으로 쉬고 있는 흑인부부 등 미국 소시민의 생활단면이 냉철하게 묘사되어 있다.

윌리엄 클라인의 사진집 '뉴욕'은 '미국인'보다 2년 앞선 1956년에 간행되어, 60년대 세계의 사진가들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확실히 시대를 앞선 충격의 사진집이었지만 흥미롭게도 프랭크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출판된 당시에는 묵살당했다. 이 사진집이 주목받은 것은 출판 4년후인 1959년도 프랑스의 나다르(Nadar)신인상을 받고부터였다.

프랭크의 '미국인'은 개인적인 시점에 의한 획기적인 사진이었지만 종래의 사진을 부정하는 듯한 영상을 전면에 밀어낸 도전적인 표현은 하지 않았다. 즉 클라인의 '뉴욕'에는 카메라 흔들림, 거친 입자, 뭉개진 톤 등의 작화상의 터부가 대담하게 구사되어 있고 아무도 묘사하지 않았던 뉴욕의 모습을 신랄하게 들추어내고 있다. 사진사상 이렇게 가혹하고 격렬한 표현을 갑자기 사용하기 시작한 예는 드물 것이다. 30년대의 만 레이(Man Ray), 모흘리 나기(Moholg Nagy)의 포토그램의 수법에 의한 아방가르드 사진과 비교해도 정채(精彩:정해진 색채)를 띠고 있다.

1981년 뉴욕의 현대미술관에서 개최된 쇼규모 클라인 회고전에서는'뉴욕'을 비롯해서 그 후의 '로마' , '모스크바', '도쿄' 의 사진집들에도 작품이 발췌되어 있었지만 시간이 흐른 뒤 냉엄한 눈으로 보아도 단연 '뉴욕'의 사진이 뛰어나고 강렬하고 충격적이다.

짙은 색의 간판이나 조명과는 장반대로 딱딱하게 굳어버린 풍경, 모두가 광기어린 자기주장을 하면서 왠지 밀납인형같은 물질화된 사람들, 번쩍번쩍 생명력이 넘치고 있는것 같지만, 죽음의 냄새가 감도는 풍경. 삶과 죽음의 불협화음의 이중성이 '뉴욕'에는 교묘하게 영상화되어 있다.

클라인 자신이 '뉴욕은 아름다움과 온화함, 거치른 야성이 알 수 없는 위협의 혼합체'라고 말하고 있지만 이 말은 무엇보다도 뉴욕에 대한 이미지를 나타내는데 가장 좋은 증명이 될 것이다. 클라인의 사진에서 초점이 어긋나고 흔들리며, 거친 입자 등의 표현은 치밀하게 계산된 결과일까?

클라인은 처음 화가가 되려고 화가 훼르난드 레제(Fernand L'eger)에게서 사사받고 후에 사진가로 전향하였다. 그리고 추상적인 사진으로 개인전을 연 것이 계기가 되어 '보그'지에 디자이너로 채용되었다. 사진집 '뉴욕' 이후 그는 실험적인 패션 사진을 촬영하였기 때문에 확실한 기술을 습득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되기 쉽지만 그의 초기작품에서 볼 수 있는 카메라의 흔들림이나 입자의 거칠음 등은 우연마저 받아들인다는 발상의 본질적인 자유스러움에 본래의 특색이 있다.

이점은 프랭크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사진의 오른쪽이 올라간 불안정한 구도는 많은 추종자를 낳았다. 제2사진집 '나의 손금(The Lines of My Hand, 1971)'에는 '미국인'에 수록되어 있는 사진들의 밀착인화가 들어 있는데 이것을 보면 카메라를 고의로 기울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클라인은 'Hot', 프랭크는 'Cool'한 차이는 있어도 인간생활의 드라마틱한, 혹은 절정의 순간을 포착하는 사진에서 벗어나 일상의 단조로운 생활에 시점을 맞추었다는 점에서는 서로 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