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진은 초소형, 초경량 미니어처 조각을 만든다. 작품의 재료는 합성 점토, 진공청소기에서 나온 쓰레기, 먼지, 죽은 벌레 등이다. 그는 이렇게 ‘흔하고도 흔치 않은’ 재료로 채 1cm도 되지 않은 초미니 설치물을 제작한다. 그리고 눈에 잘 띄지 않는 전시장 구석구석으로 그 소인국 풍경을 들여놓는다. 벽과 바닥의 좁은 틈새, 계단, 전선, 천장 주변 등. 작가의 말을 빌자면 “상상을 불러일으키고 이야기가 스멀 스멀 빠져나올 수 있는 공간”이다. 일정 거리를 둔 채 작품을 감상하던 기존의 전시 구성과는 너무나 다른 전시장 풍경에 사람들이 놀랐다. 미술계의 차세대 리더 함진은 이처럼 기발하고 유쾌한 작업을 가지고 등장했다. 그는 올해 데뷔 11년 차. 서른 두 살의 나이지만, 젊은 작가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 화려한 이력을 자랑한다.

함진이 미술계에서 주목 받기 시작한 시기는 1999년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에서 주최한 공모전에서 수상한 후부터다. 그는 100대1이 넘는 경쟁률을 뚫고 당당히 첫 개인전을 여는 행운을 거머쥐었다. 당시 그는 대학교 4학년생이었다. 이후 이 신예 작가는 부산비엔날레(2000), 광주비엔날레(2001) 등 스타급 작가의 요람이었던 국제 미술행사에 연이어 초청되었다. 또한 2005년에 열린 제51회 베니스비엔날레에서는 한국관 참여 작가로 선정되는 기염을 토했다. 김선정 씨가 커미셔너를 맡은 한국관은 김범 김홍석 박기원 이주요 최정화 등 15인의 걸물이 총출동해 규모면에서도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 역시 함진(陷晉)이라는 이름 풀이대로 세계 미술계를 향해 ‘나아가는’ 초석을 다지는 기회가 되었다.  맞벌이를 하시던 부모님 때문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던 그는 어린 시절을 찰흙놀이에 빠져 지냈다. 찰흙을 주물럭거리며 여러 형상을 만들어내곤 했는데, 이처럼 그의 ‘마이크로 미니’ 설치 작업은 어린 시절과 연관이 깊다. 그러나 ‘환쟁이’ 유전자가 없었던 집안에서 갑작스레 미술을 하겠다는 아들의 때 아닌 주장은 부모님을 당황하게 했다. 처음에는 심한 반대에 부딪혔다. 그는 “내 인생 책임지실 거냐”며 울고불고 매달린 끝에 결국 허락을 얻어냈다. 그리고 경원대 환경조각과로 들어갔다.
 
“대학교에 들어가면 재미있게 조각할 줄 알았어요. 그런데 대학 수업이 서양식 조각에 맞춰져 있었죠. 마치 동양인이 서양인 체형에 맞춰진 옷을 입고 있는 듯 어울리지 않은 분위기였어요. 우선은 크기가 너무 커서 힘들었어요. 만드는 과정 속에서 등골이 다 빠져요. 창조력이란 것이 기분이 좋아야 나오는 건데, 기분만 더러워지니. (웃음) 학교에서 가르치는 작업은 대형 시스템과 숙련된 기술은 물론 여러 명으로 구성된 팀 작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혼자 즐기는 걸 좋아하는 나와는 어울리지 않았죠.” 그렇게 본인에게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수업을 따라가던 어느 날, 함진은 친구들과 석고가 마르기를 기다리며 수다를 떨고 있었다. 손에는 점토가 들려 있었고 작은 형상들을 심심풀이로 만들며 시간을 죽이던 차였다. 마치 어린 시절에 그가 즐기던 찰흙놀이처럼 말이다. “자그마하게 피카츄나 텔레토비 같은 이미지를 만들면서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놀았어요. 그렇게 작업하는 것이 그 동안 내가 했던 대형 조각에 비해 훨씬 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기분이 즐겁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잖아요. 이렇게 해서 지금의 작업이 시작된 거예요.”
 


 

함진이 탄생시키는 점토 인형은 손에 들기에도 아슬아슬할 정도로 작은 크기다. 더욱 감탄을 자아내는 것은 손톱 크기에도 미치지 않는 이 미물 같은 초소형 사람과 동물이 갖추고 있는 다양한 표정과 포즈다. 그리고 기발한 스토리 설정이다. 관람객이 자세를 한껏 낮추고 그의 작업을 집중해서 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2005년 일본 모리미술관에서 열린 <침묵의 우아함>전에서 관람객이 줄을 서서 그의 작품을 관람했다는 일화는 단순히 일회적 사건만은 아니다. “작품에서 이야기를 끌어내지 못한다면 관람객이 대충 보고 일어나겠죠. 나는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데 자신이 있어요. 영화 같은 스토리나 현실에 빗대어서 독특한 캐릭터를 창조하는 것에 특별한 재주가 있거든요.”
 
매향리 미 공군사격장에서 주워 온 불발탄 위에 현대판 도시 풍경을 재현한 <폭탄 위의 도시>. 그가 주위에서 관찰하고 또한 상상하는 현실을 기발한 아이디어와 함께 풀어낸 이 작품에는 셀 수 없는 이야기가 가득 담겨 있다. 옷을 제대로 챙겨 입지 못하고 샌드위치를 먹으며 바삐 뛰어가는 회사원, 프라이팬을 들고 출근하는 여성, 틀니가 빠질 정도로 노인정을 향해 걸음을 내달리는 노인, 유명 브랜드의 심볼을 얼굴에 붙이고 서로에게 각목을 들고 위협하는 인형들 등. 그것은 마치 현대판 <지옥도>를 보는 듯 하다. “제가 네덜란드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쉬를 좋아해요. <폭탄 위의 도시>는 보쉬의 작품과 연관이 깊어요. 서울이란 도시를 증오하면서도 사랑해요. 모든 것이 양면이 있는 거잖아요. 모두들 살기 위해서 부단히 애쓰고 있어요. 한편으로는 우습게도 보이지만 눈물이 나는 풍경이죠. 그런 점에서 이 작업이 완벽하게 보쉬의 <지옥도> 같은 작품은 아니예요. 내 작업에는 사랑이 담겨 있으니까요.”
 
그와의 인터뷰 가운데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를 들라면 ‘자연스러움’과 ‘소통’이다. 함진은 자연스럽게 찰흙놀이에 빠졌고 자연스럽게 작은 조각을 만들었으며 자연스럽게 그에 어울릴 만한 틈새 공간에 초미니 인형들을 설치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사람들에게 재미와 웃음을 선사하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작가는 ‘자연스러움’이라는 지극히 정직한 자기표현법으로 사람들과의 소통을 꾀한다. 그러나 잘못된 오해 때문에 상처를 받기도 했다. (아니면 지금까지도) 그 오해의 시작은 작가가 다루는 대상의 쇼킹할 만한 작은 크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혼자 있기를 좋아하고 찰흙놀이에 빠져 있는 그에게 자폐적 성향이라도 있는 것처럼 잘못 알려진 것도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자폐라는 병적인 것과 연관 지어, 나란 사람을 아예 다른 종(種)이라고 치부해 버리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자폐는 소통이 되지 않는다는 거잖아요. 내 작업은 무엇보다 소통을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데 말이죠. 일일이 관객에서 설명이 따라붙는 다른 예술 장르에 비해서 내 작업은 얼마나 이해가 쉬워요. 친절하게 제목도 다 달려 있는데 말이죠. (웃음)”

우뚝 솟은 도시의 마천루나 육중한 몸집의 낯선 이를 올려다 본 경우가 있을 것이다. 시야를 한 눈에 잠식해 들어오는 거대한 윤곽에 압도당하는 기분, 우리는 보통 규모의 우월함 앞에서 작아지는 경향이 있다.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경우에도 이와 비슷한 심리가 적용되는 양 싶다.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사람들은 혀를 내두를 정도로 작은 그의 작품 스케일에서 당황한다. 그리고 섬세한 디테일과 아이디어 번쩍이는 스토리텔링의 파워를 간과한 채 ‘재밌다’라는 영양가 없고 무미건조한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그러나 작가는 크기의 상대적 차이가 과연 무엇인지 반문하며 목소리를 높인다. “선입견이라는 것도 웃기죠. 굉장히 크다는 것과 작다는 것이 무슨 차이가 있다는 건지 모르겠어요. 다만 내가 큰 것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있어요. 너무 강해서 한 번에 읽힌다는 점이예요. 대신 만화책이나 소설책처럼, 읽다 보면 계속해서 새로운 것이 나오는 것이 좋아요. 다양해서 읽을거리가 많은 거요.”


미니어처 조각들 각각이 이루어내는 하모니는 강하다.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있다. 가장 미미하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것이 가장 크고 강하다는 이야기였던 듯싶다. 함진의 작품이 선사하는 감정의 파동 역시 같은 지점에 서 있다. “일상에서 재미를 발견하는 방식을 관람객에게 보여주고 싶어요. <어린왕자>에서 여우가 말하잖아요. “진짜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저도 그 말에 살짝 공감해요.” 가슴 속을 간질간질하게 어루만지며 재미를 줄 수 있는 것에 몸을 약간 낮추는 노동력쯤은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한없이 연약해 보이는 이 마이크로 미니 작업들을 단지 안정된 곳에만 안착시키지 않는, 작가의 유연한 설치 방식에도 주목을 했다. “작품이 사라지고 없어진다는 면에서 담담한 편이예요. 기억에 남는 전시 중 네덜란드 틸버그의 오래된 삼림공원에서 열린 <원더랜드>전이 있어요. 야외 전시였는데, 나무 위나 수풀 사이에 작품을 설치했어요.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면 점토 인형 수 십 개가 우수수 떨어졌죠. 심지어 산책 나온 개들이 끙끙하고 냄새라도 맡으면 작품이 쑥대밭이 되고 말았어요. (웃음) 결국 전시 후에 작품이 하나도 돌아오지 못했죠.”
 
전시가 진행되는 공간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작가는 작품의 일부를 전시 공간에 직접 들고 가서 마무리 작업을 한다. 그의 ‘소인국’은 비록 초소형 미니어처 세트로 구성되지만, 그 각각의 존재감은 결코 가볍지 않은 고난이도 노동력의 산물이다. 파리가 하이힐을 신고 있는 포즈라든지 파리를 껴안고 있는 소년의 얼굴과 같은 세세한 디테일은 매우 정확하고 치밀한 계산이 필요하기 때문일 터다. 함진은 스스로를 엄청난 노력파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의 부연 설명은 또 한 번 폭소를 터뜨리게 한다. “스토리 방향이나 화면 설정 잡는 데 굉장히 많은 생각을 해요. 노력파긴 노력파죠. 근데 보통 사람들이 노력하는 방법과 달리 나는 잠을 많이 자는 편이예요. 자던지 그냥 멍 때리던지.” 함진은 종종 홍대 근처 커피숍에서 작업을 한다. 음악도 듣고 차도 마시고 계절에 따라 적절히 유지되는 커피숍 온도도 마음에 들어서다. 사람들의 의혹에 찬 시선을 감내하는 두둑한 배짱이 요구되긴 하지만, 작업실을 필요로 하지 않는 작업 스타일 때문에 그는 ‘자연스럽게’ 커피숍으로 향한다. “홍대 커피숍에서 우연히 마주치더라도 겁내거나 이상하다고 씹어대지 마세요. 내가 시력이 굉장히 좋은데, 귀도 참 밝거든요. 아무리 작게 말해도 다 들려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