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복제의 안락함에서 경쟁 속으로

                                                                        글 김태윤(관훈갤러리 큐레이터)


사진을 다른 매체와 구분 짓는 두드러진 특징은 무엇보다도 복제성을 들 수 있다. 또한 그 복제성에 기초한 원화(Film 혹은 File)의 확대, 축소 역시 부수적으로 관련된 특징이다. 판화도 복제성을 매체의 차별적인 특성으로 삼고 있으나 복제의 능력 곧 제품의 수량과 품질에 있어서는 사진에 비할 바가 못된다. 더욱이 사진의 복제성은 단순히 다른 매체나 예술장르와의 구분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과학을 바탕으로 한 사진 본유의 전제된 가치이다. 이렇듯 사진이 가지는 특유의 복합성, 즉 과학인 동시에 예술이기도 한 상반된 배경은 예술 개념에 있어서도 많은 야기점을 제기하였다.



기계복제예술로서의 사진


사진은 발명초기 회화의 복제수단 혹은 그림을 그리는데 사용될 원안으로서의 기록에서 그 발생 의의를 가졌고, 이는 한편으로는 오랜 시간 사진이 예술인지 아닌지 논란이 될 때마다 사진의 발목을 잡았다. 즉 사진 이전의 예술이 가졌었던 기본적인 개념은 사진의 복제성과는 대조를 이루는 오리지날리티(Originality)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W.벤야민이 말한 대로 문명의 발달로 새롭게 등장한 기계복제기술은 오직 ‘지금, 여기’에만 존재하는 유일성의 신화를 깨고, 근대사회의 시민들이 눈 뜬 평등의식과 직결되는 계기를 만들었으며, 대중의 예술에 대한 예배적 태도에도 타격을 주었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사진은 다만 예술의 복제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기계복제예술이라는 장르를 형성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이 그 형식뿐만 아니라 개념적 내용에도 자신의 위치를 확고하게 해준 복제성에 대하여 한정을 두는 것은 어쩌면 사진 스스로 매우 꺼려지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이와 같은 불리함과 제한에도 불구하고 사진이 무한복제의 안락함으로부터 뛰쳐나와 자신에게 스스로 제약을 가하는 에디션의 개념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자본주의 사회의 시장경쟁에 내몰린 예술가의 위치와 관계를 가진다.



예술에 대한 소유욕의 변화, 자본주의와 디지털


오랜 시간 예술은 그 제작 배경에 공식적인 후원자들을 가지고 있었다. 고대의 각 문명권에서는 황제의 영광과 장수를 기원하는 초상화가 있었으며, 중세에 화가는 후원자인 교회와 고용관계로 맺어졌다. 왕실과 귀족도 후원자 역을 이어갔으며, 근대 시민사회의 성립과 함께 등장한 자본가층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예술이 후원자를 가지고 있던 시대에는 일부 제한된 지배계층 이외의 서민들은 부분적으로 예술을 공유할 수 있었는지는 몰라도 소유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산업혁명 후 경제력을 바탕으로 한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부르주아 계급은 과거 계급사회의 지배계층이 누렸던 특권을 잇기를 열망하고 있었으며, 결국 이러한 풍조는 예술에 대한 소유욕을 유발하게 되었다.
한편 인쇄와 TV, 영화 등 미디어의 발전으로 현대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누구나 예술을 공유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예술품 소유는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손쉬운 풍요가 되지는 못하고 있다. 이러한 제한된 환경 속에서 예술은 정신적으로 볼 때는 점점 추상적인 것에 관심을 가지는 경향이 있으며, 예술 상호간의 경계도 그 선이 불분명해지며 서로의 방법을 차용하는 인터액티브(Interactive)한 양상으로 전개된다. 게다가 사진 내부적인 면에서의 구체적 변화는 예술 전반에 관한 정신적 변화보다 더 큰 시대적 전환점을 가지고 있으니, 그것은 디지털의 발생과 이후 광속과도 같은 발전의 변환이다.
이제 누구나 액정 속의 이미지를 확인하며, 과거 프로 사진가들의 테크닉을 모방하고 기술적인 차이를 좁히고 있다. 디지털카메라와 포토샵의 발전 그리고 인터넷을 통한 이미지의 전송은 이미 많은 상업스튜디오에게 어려움을 주었으며, 디지털 프린트가 놀라운 발전과 상용 그리고 전시의 최종 작품으로 보여지기까지 하는 상황은 본래 사진이 구별되는 예술의 위치를 누리게 했던 복제성에 물음을 제기하게 된다. 결국은 에디션이라는 형태는 사진매체의 필수불가의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에디션은 사진시장경제 내에서의 공급자와 수요자 간의 상호 거래 규약으로, 공정하고 일관된 기준과 협약이 마련되어야 한다(자료사진)



공급자와 수요자 간의 거래, 일관되고 공정해야


본래 에디션은 사진의 발생 이전에 수단으로서의 매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사진의 역할을 하였던 판화에서부터 생겨났다. 판화가 가지는 복제성 그리고 그 복제의 한계(목판화나 전통적인 오목판화(동판화)는 에디션이 일정 한도가 넘으면 원판이 마모되는 한계를 가진다)는 에디션이라는 방법을 만들어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작품을 팔고 싶어 하는 공급자인 예술가와 자신만이 작품을 가지고 싶어 하는 수요자인 컬렉터 간에 서로의 필요와 만족을 충족하게끔 하는 거래의 설정이 작용한 것은 당연하다.   
예술가가 그 어떤 후원자를 갖지 못하며, 혹 부분적으로 갖게 될지라도 그와 자유경쟁을 해야 하는 시장경제 속에서 사진도 무한 복제성이라는 안락함을 버리고 이제 에디션이라는 새로운 경쟁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아야만 하게 된 것이다. 예술가와 수집가의 관계는 시장경제 속에서 볼 때 거래의 공급자와 수요자로 이해될 수 있다. 따라서 사진가는 에디션에 대한 입장을 거래에 관계된 진지함과 공정함이라는 기준으로 생각해야만 한다.
모처럼 일어난 미술시장의 부흥 그리고 사진에 관한 친절한 관심 이러한 모든 것들이 시장경제의 가이드라인인 공정거래라는 틀에서 벗어난다면 생각보다 빠른 시간에 탈선과 붕괴를 맞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더욱이 에디션에 관한 사진가들의 일관성 있는 입장과 진지함 그리고 성실한 책임은 시장경제나 디지털 시대의 도래 혹은 예술 흐름의 변화 등 우리를 둘러싼 모든 중요한 쟁점보다도 근본적인 작가로서 신뢰의 문제다.



에디션이란?

사진 작품의 에디션(Edition)과 A.P 그리고 원본에 관한 작가들의 의견과 이해정도는 조금씩 다르다. 본래 에디션은 사진이 전제로서 가지고 있던 복제성과 관계를 갖는 변화이며, 그 배경은 시장경제 내에서의 공급자와 수요자 간의 상호 거래에 대한 충족을 바탕으로 한다. 즉 공급자는 자신의 생산물을 팔고 싶고, 수요자는 자신이 구매한 생산물이 한정성을 바탕으로 한 특별함을 가지기를 원한다. 따라서 사진이 시장경제의 원리에 따라 에디션이라는 형태로 무한 복제성에 한정을 두었다면 또 다른 사진의 고유한 특성인 확대, 축소와 관련되어서도 그 입장이나 기준이 일관성 있는 견해이어야 한다. 그리고 모든 거래에서 수요자는 거래되는 물건에 관하여 공급자와 동일한 정보를 가지기를 원한다는 것을 잊어서도 안될 것이다. 

* 아래 내용은 에디션에 대해 지금까지 언급한 내용을 전제로 한 하나의 제안이며, 공급자인 작가와 수요자 보다 수집가가 객관적이며 공정한 관계를 맺기 위해서이다.

1. 에디션과 표기방법 : 에디션은 작가가 한정적으로 인화할 작품의 수를 공지하는 것으로, 예를 들어 1/10이라면 인화를 할 작품의 총 매수는 10장이며 그 중 첫 번째로 인화한 사진이라는 의미이다. 만일 작가가 전시된 작품과 다른 사이즈로, 에디션의 수량 외에 인화할 계획이 있다면 그러한 사항은 수집가에게 별도의 계약서 등을 통하여 반드시 공지되어야만 한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공급자인 작가와 수요자인 수집가는 거래된 물건(작품)에 관하여 서로 다른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것이 되며, 그것은 불공정한 거래에 해당된다.(일반적으로 에디션은 작품의 좌측 하단에, 서명은 우측 하단에 중성펜을 사용하여 표기한다)

2. A.P(Artist Proof) : A.P는 작품의 보존을 위해 작가가 소유한 작품의 수이다. 이 역시 에디션과 같이 처음 자신이 밝힌 A.P 이외의 다른 사이즈에 대한 인화 계획이 있다면 에디션에 관한 이유와 동일하게 그 사항이 수집가에게 전달되어야만 한다.

3. 원본 필름과 파일의 보존 : 원본에 관해 판화에서는 C.P(Cancellation Proof)라는 표기(모든 판을 찍은 후 폐기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판에 X표나 다른 표시를 하여 더이상 본 판으로 찍어낼 수 없음을 나타냄)와 함께 원본을 폐기하지만, 사진은 판화와 달리 인쇄와 보다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인쇄원고는 작품과 관련된 에디션과는 별개의 사항이므로 그 원본을 파기하지는 않는다.